트루 디텍티브, 고통과 환상의 경계에서

캐리 후쿠나가 감독. 트루 디텍티브 시즌3

by 백승권







남매가 실종된다.
오빠는 사체로 발견된다.
여동생은 없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동네 사람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곳은 마치 한 아이를 없애기 위해
모두 가세한 듯 보이기도 한다.

아이들을 방치하고 약에 찌든 부모
수사를 방해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공권력
여전히 흑인을 천대하고
동성애자를 멸시하는 우월주의까지

자기 딸도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이
거친 백인들을 압박하고
고물을 주어다 파는
소수민족 남자는 표적이 된다.
정체불명의 저놈이
우리 애들한테 접근하고 있다.
저놈이 범인이다 족치자.
불안은 증오로 돌변하고 폭력으로 번진다.
격렬한 총격적인 벌어진다.
대부분의 가담자가 사망한다.
웨인의 동료도 부상을 입는다.
증거가 조작되고 범인이 결정된다.
사건이 덮인다. 웨인은 형사를 관둔다.

가난한 집안의 흑인으로 태어나
어쩔 수 없이 군대에 자원해
제대 후 형사일에 매진하는

웨인(마허샬라 알리)에게
범인을 찾는 일은 자신을 증명하고
스스로 인정하는 유일한 방식이자 전부다.
아내와 아이들이 생긴 후에도
그의 가장 큰 관심은 여전히
찾지 못한 소녀다.

동료의 도움으로 복귀한 웨인은
다시 소녀 실종사건을 파헤친다.
이미 너무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고
웨인과 주변의 삶도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황폐하게 살아가던
소녀의 부모도 모두 사망하고
은폐한 자들을 수사하던 중
겁박과 폭력이 오가고 사망자가 발생한다.
사라진 소녀가 살아있다는 물증이 발견되었고
소녀가 사라진 이유와 연관된 자들이
같이 찾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자욱하다.
아무것도 아무 길도 보이지 않는다.
남은 건 헤어 나오지 못한 죄책감과
주변인들과의 깊어진 갈등.
웨인은 다시 경찰서를 떠난다.
자신을 다시 한번 파괴하는 결정이었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뭔가를 하면 할수록
죽고 다치는 자들과 싸움과 자책만 늘어갔다.
모두가 말리는 일을
홀로 고집한 결과가 이거였다.
명분이 없었다.
정의? 낡고 구겨진
사건 파일이 정의의 현주소였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다면
정의가 무슨 소용인가.

세월이 지나고
웨인의 걸음은 느려진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
안경 없이 보이지 않는 시력
장성한 자식들과
먼저 지상을 떠난 아내
흐릿해진 기억과 현실 자각 능력
사라진 소녀 사건은 천추의 한이다.
아내가 발간한 논픽션에서
놓치고 있던 조각들을 줍는다.
아무도 원하지 않는 수사를 다시 시작한다.
같이 늙어, 거동도 힘든
그때 그 동료와 함께.

너무 긴 시간이 지난 후
도착한 진실은 예상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후회와 회한이 가시지 않았다.
의심을 떨칠 수 없었다.
죽은 아내가 말을 걸었다.
다른 엔딩을 떠올려보라고 부추겼다.
소녀는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소녀를 오랫동안 사랑해준 착한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착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고.
웨인은 믿고 싶었다.

트루 디텍티브 시즌3는
조각난 회상 속 과거와
불안한 기억의 현재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회상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결국 이 모든 게 아멜리아가 쓴
논픽션의 재구성이었나 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아이를 잃은 슬픔이
타인의 아이를 앗아갈 만큼
잔혹하게 변할 수 있다는 것.
친자식의 실종마저
부모의 이기를 위해
거래할 수 있다는 것.
한 사람의 생사를
파악하는 동안
수십 명의 목숨을 잃는다는 것.
타인의 자식을 찾다 보면
자신의 자식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부조리
모순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인간과 생의 진실, 허무와
마주하게 한다.

사는 내내 죽도록 고생했다면
마지막 한순간만큼은
평온한 환상으로 끝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끝없는 고통과
괴로움만이 동력이 되는 삶을
지지하는 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



keyword
이전 22화사바하, 믿음이라는 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