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현 감독. 사바하
종교는 소속감을 준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건
불상이나 십자가가 아니다.
상처 받은 사람들에겐 죽지 않을 이유가 필요하고
외로움에서 빠져나갈 구실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곳,
타인이 필요하다.
나의 비극과 비참함, 슬픔과 괴로움, 고통과 절망이
내게만 유일하게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걸
동의해줄 사람, 목소리, 신호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방향의 제시까지 해준다면 더더욱.
앞뒤 분간도 못할 혼란 속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재간이 없다.
저기로 일단 가라고 일러주는
손가락, 지령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 혼자가 아니고
(그래서 죽지 않아도 되고)
내가 앞으로도 혼자 걷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앞으로도 죽을 가능성을 낮아지게 하는)
불확실한 안도감.
종교는 이렇게 종교가 된다.
외로운 나를 외로운 우리로 바꿔주면서.
신이 인류의 역사에 어떻게 활용되었는지
그 어마 무시한 영향력을 인지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은 늘 논란이 된다.
인정하는 부분과 인정하기 힘든 부분,
밝혀진 부분과 여전히 추측으로 남겨진 부분,
살아남은 자들과 죽고 다치는 자들,
각자 각자의 신의 형상에 대한 믿음 안에 거한다.
해석이 다른 자들끼리 도륙하기도 한다.
집권 도구로 쓰며 미사일을 날리기도 한다.
하지만 늘 같은 건 부재와 침묵이다.
신은 기록으로만 존재했고,
사자들의 전언으로만 살아있었다.
이를 인정하는 자들이 신에게
생명유지장치와 인공호흡기를 달아주고 있었다.
고난도 은혜라는 말은
경험의 영역으로 넘어왔을 때
지옥도 천국의 인트로라는 말로 치환된다.
은혜 티켓을 받아야 천국 입장이 승인되는데
은혜가 고난이고 지옥이라
받자마자 불타고 찢기고 목이 매달려 죽는다면
그래서 의식불명과 혼수상태로
부들부들 떨고 있다면
아비 새끼한테 처맞다가 끝내
그 아비를 때려죽인다면
이게 고난이고 천국행 티켓 발급 조건이라면
비로소 미션을 수여받고
은혜를 누릴 자격을 받는 거라면
사후세계가 너희를 위한
성대한 쇼와 만찬을 준비할 거라고 속삭인다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뭐가 있을까
어린 여아들 80여 명을 죽여야
천국행 누적 포인트가 쌓인다는데
받들겠습니다. 하면 되는 건가.
인간에게서 신을 감지할 만큼 나약한
소년들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며
여아 살해를 명령하는 (남성) 신을
언제까지 의지해야 하나.
의심이 죄라면 신은 살인교사죄다.
비대한 자아와 다수의 믿음을 장착한 채
공익광고 미소를 띤 인간의 얼굴을 한 신은
애초 정체가 무엇이었든
인간의 육신과 머리 안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판단과 행동을 저지른다.
예언 한마디에 떨며
죽음의 공포에 빠진 인간의 비참한 표정 속에서
대량 학살을 계획하고 명령하며 저지른다.
진짜 사탄은
휠체어에 탄 노승 아니었을까.
그의 혓바닥에서 시작된 저주가 결국
같은 해에 태어난 여아들을
모두 적그리스도로 규정했으니.
그리고 아내와 자식을 때리는
타락한 아비들 역시
사탄의 혐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악의 씨는 여자의 배가 아닌
남자의 폭력으로부터 잉태되며
이런 근원을 덮은 채
종교의 교리를 따른 들
해답을 찾을 리 없다.
천사는 천사의 형상이 아니고
악마는 악마의 형상과 다르다.
가장 흉측한 몰골로
거악을 처단할 무기를 쥐어주고
가장 환한 미소로 천사를 제거하라 명령한다.
사이에 끼인 인간은
사랑받지 못한 채 너무 일찍
어미 곁에서 멀어진 자라서
갈등과 번민의 가위에서 억눌릴 뿐
단 한순간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가까운 자들만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신을 만나 신의 명에 따르며 신을 돕고 있는데도
세상은 여전히 지옥이고
때로는 자신이 지옥의 일부 같기도 하다.
자신의 아비가 어미와 자신에 저지른 짓보다
더 미친 짓거리를
신의 이름 아래 저지르고 있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경계 없이
모두가 지옥의 불길 위에서
끝나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래도
종교는 앞으로도
빠져나갈 명분이 많다.
어두울수록 빛은 밝아지고...
암흑이 지나면 해가 뜬다...
이런 소리를 하겠지.
영화 사바하는
사이비 종교와 맹신하는 자들이 아닌
신 자체를 비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