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스 도리 감독.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시골의 노부부 남편 루디와 아내 트루디. 아내는 병원에서 남편의 시한부 선고를 듣는다. 오래전부터 후지산을 동경해온 트루디는 일본 여행을 제안하지만 남편 루디에 의해 미뤄지고, 대신 도시(베를린)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 집을 방문하기로 한다.
당황한 장남, 어색한 표정의 며느리, 못마땅해하는 딸과 그녀의 동성 애인. 얼굴은 웃지만 그들에게 부부는 일상에 불쑥 끼어든 이방인일 뿐이었다. 반갑지만 그때뿐인, 보고 싶었지만 같이 지내고 싶진 않은, 키워줬지만 지난 일이고, 핏줄이지만 불편한 사람들, 부모라서.
노부부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마냥 어색해한다. 하지만 그들은 부모와 노인이기 앞서 여전히 애틋한 연인들. 서로 다른 침대에서 잠드는 순간까지도 손을 꼭 쥐며 다정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소녀 같은 표정으로 루디를 바라보는 트루디. 늘 남편을 자신의 전부처럼 끌어안았지만 이제 떨어질 거라 생각하니 눈물이 터져 흐른다. 그녀의 간절한 바람이 이뤄졌는지, 어느 날 아침, 트루디는 끝내 눈을 뜨지 못했다.
영영 해가 뜨지 않는 다해도 이만큼 어두울까? 모든 공기가 사라진다 해도 이만큼 답답할까? 그녀가 입었던 스웨터, 그녀가 걸고 다니던 목걸이, 그녀가 두르던 치마. 마치 곁에 아직 남아있는 듯, 남편 루디는 그녀의 옷가지들을 그녀가 매일 눕던 오른편에 나란히 둔 채 손(소매)을 잡는다. 보내지 못한 듯, 이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하듯.
남겨진 사람들. 자식들은 홀로 남은 아비를 ‘떠안기’ 싫어하는 탁상공론을 멈추지 않는다. 루디는 아내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후지산이 있는. 트루디가 가장 애지중지했던 막내가 살고 있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그곳에서 아내의 방식으로 미뤄둔 자식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떠나간 아내, 멀어진 자식들, 낯선 도시. 세상에 홀로 남겨진 루디는 아내의 옷차림으로 일본을 걷는다. 그리고 때때로 코트를 활짝 열어본다. 보라고, 여기 바로 당신이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곳이라며. 와중에 만난 소녀. 아내가 그리도 좋아하던, 그렇게 꿈꾸던 ‘부토’(내면 지향의 일본식 현대 무용)를 홀로 추고 있었다.
소녀에게 춤을 배워가며 떠나간 사람과 공존하고 또 소통하는 법을 알아가는 루디. 그것은 마치 아내와 점점 가까워지는 길을 찾는 여정 같아서, 신비로우면서도 조금씩 세상에게서 단절되고, 아련한 연민이 밀려오는 낯선 움직임의 향연. 어느 새벽, 어쩌면 아내 트루디가 떠났던 그 시각. 루디는 후지산 앞에서 바람을 이룬다. 아내와 함께하는 춤, 더 이상 외롭지 않길.
남겨진 것들을 체감하게 될 순간들이 오게 될까 봐 늘 두렵다. 그래서 오늘 더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싶어 떨어진 한 순간도 늘 아깝기만 했다. 우리 중 어느 누구에게도 저런 슬픔을 안겨줄 권리를 주고 싶지 않아서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먼저 떠날지 언정, 먼저 보내지 못할 거라고. 그건 굳이 상상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행위이니까. 영화를 본 후, 그녀의 옷가지를 손에 꼭 쥔 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