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즈윅 감독. 블러드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는 영원히’라는 카피가 있다. 단 한 줄, 처음 봤을 때. 뭐 이렇게 싱거워 라며 무시했다. 다이아몬드(이하 다이아)의 명성을 생각한다면 칭찬일색의 카피로 도배를 해도 모자랄 판이라고 생각했다. 해는 바뀌어도 카피는 변함이 없었고 마주칠 때마다 코웃음을 쳤다. 저걸 읽고 누가 사겠어 라며 보석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비웃었다. 반짝거리는 돌멩이 따위, 그 가치와 상징이 어찌 됐든 다이아는 모든 사람들의 워너비 주얼리였다. 하지만 그 기업은 괄목할만한 수익을 올리고 있었고 카피는 점점 힘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다이아는 그냥 돌이 아니었다. 다이아는 정말 끝내주는 돌이었던 것이다.
라면 먹을 때마다 시청하는 온스타일 채널에서도 다이아에 얽힌 가십은 단무지에 식초 같은 궁합으로 등장하고 있었다. 큰 거 하나 욕심 내다가 3대가 멸족했다는 사건은 잊을 만하면 나와 이제 미스터리 같지도 않았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잘 나가는 미녀와 결혼하려면 츄파춥스만 한 다이아는 끼어줘야 할 것 같은 공식이 성립되고 있었다. 춘향이가 미국 나이트에서 태어났다면 그쯤 되지 않았을까 사료되는 물랑루즈의 그녀도 그네를 뛰며 다이아 없으며 가정으로 돌아가 라고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졸이고 있었다. 애정의 크기를 넘어 재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보석. 늘어나는 돈과 욕망의 개수만큼이나 원산지의 토양은 붉어지고 있다. 노을이 아닌 피로.
일간지 국제면을 종종 장식하는 사진들 중엔 피부색과 문화권을 넘어 가슴을 아리게 하는 장면들이 종종 등장한다. 한쪽 팔을 잃고 AK를 들고 있는 비장한 표정의 소년 반군이나 피로 젖은 아이의 주검을 안고 울부짖는 어미의 모습 등. 보는 순간 숨은 깊어지고 자신의 행복지수를 체크하며 감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걸로 끝이다. 목숨 걸고 찍은 현실 그대로의 사진들은 고발에 그칠 뿐 선동에 이르지 못한다. 대다수 자기 일이 아니고 그냥 안타까운 그들만의 사정일 뿐이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사진 속 주검들은 경제논리에 근거한 필연적인 희생자들이다. 수요에 따른 공급을 위한 과정에서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죽어진 것이다. 그 네 번째 손가락에서 반짝반짝 거리는 다이아 때문에.
사상과 이념의 차이로 죽고 죽인다지만 경제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떠한 가치 개입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 다이아를 채취하고 거래하기 위해 욕하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들의 팔이 잘리고 등이 난사당하고 목이 메어진다. 누가 먼저랄 새도 없이 가족이 몰살당하고 주민 전체가 살육되며 그 위에 불이 피워지고 시신은 장난감이 된다. 손에 피를 묻힌 이들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술과 마약에 취해 총을 갈긴다. 어린 자식을 구하러 온 아비에게 총을 겨누는 그들은 우리에겐 미취학 아동이고 그들에겐 군인이다. 소년 병사.
다이아의 광채가 널리 퍼질수록 뿌려지는 피는 더욱 진해진다. 다이아 채취를 위해 사람이 죽고 그렇게 얻어진 다이아로 무기를 사고 그 무기로 사람을 죽이고 다시 다이아를 모은다. 그 다이아는 바다를 건너고 기업을 지나 시장에 공개되고 그 다이아로 반지를 만들고 그 다이아로 목걸이를 만들고 그 반지로 사랑을 고백하고 그 목걸이로 청혼을 한다. 멀리서 한 부족이 몰살당하는 동안 한 커플은 가족이 된다. 멀리서 한 아이가 마약에 취해 자기 아버지를 죽이는 동안 한 부부는 아이를 낳는다. 다이아는 영원하다. 살육도 울음소리도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