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 5 블러드, 베트남전의 총알받이, 흑인 미군들

스파이크 리 감독. Da 5 블러드

by 백승권






한번 일어난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

이후 모든 것들에 영향을 미친다.

개인, 집단, 국가, 관계, 관점 등,

대부분 부정적으로 재편된다.


동시대에 경험한 자들,

전장 안에서 피 흘리며 싸운 군인과

전장 바깥에서 불안에 떨던 민간인들,

계산기를 두드리던 자본가들과

지도를 펼치고 게임을 하던 정략가들,


그중 베트남전의 위치는 독특하고도 견고하다.

대다수 미국 영화들은 베트남전은

미국의 개입이 잘못되었다고 자각하고 있고

이 전쟁을 다루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당시의 정치 문화사와 분위기,

비판과 회고를 겸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의 최신작이자 넷플릭스 영화

<Da 5 블러드>도 그중 하나다.

그중 하나지만 너무 다른 하나.

지금껏 베트남전 소재 영화는 한결같았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풀 메탈 재킷 등

결과 선은 달랐지만

백인 미군의 전쟁, 백인 미군의 상처,

백인 미군의 고뇌...

베트남전 미군=백인이라는 등식에 부합했다.


"흑인은 미국 인구의 11%에 불과한데

베트남 주둔 미군의 32%를 차지하죠."


미국의 인종 분포율에 대한 정보가 무지한 입장에서

베트남전은 백인 미군이 끌려가 싸우다 죽고 다치고

현재까지 오래 고통받는 전쟁이었다.

대다수의 베트남전 영화들이 그러고 있었다.

<DA 5 블러드>에서는 백인 미군이 나오지 않는다.

스파이크 리 감독에게 베트남전은

백인 대신 끌려간 흑인 미군들이 총알받이가 되어

다치고 죽고 고통받는 전쟁이었다.


베트남전 참전했던 4명의 남성들이

베트남을 다시 찾는다.

전투 중 사망한 분대장 노먼(채드윅 보스만)의

유해를 되찾는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당시 우연히 발견 후 매립했던

다량의 금괴를 찾으러 가는 게 진짜 이유였다.


당시 노먼은 금괴의 사용 목적을 분명히 했다.

흑인 인권을 위해 쓰자.

당시엔 동의했지만 현재는 달랐다.

사그라든 인생의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자

다들 금괴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베트남전에 얽힌 각자의 사연들.

누군가는 아군을 죽인 후 평생

지옥 속에서 고통받고

누군가는 베트남 여자를 임신시키고 태어난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모르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수많은 이혼과 유흥 탕진으로

재산을 몽땅 날렸다.


사상과 성격은 달랐지만

그들은 '블러드'라는 혈맹과도 같은 명칭 속에

서로의 존재와 기억을 묶어 놓고 있었다.

그 중심에 노먼이 있었다.

대장이자 부모, 선생과 교주이자

신과도 같았던 존재.

모두가 그를 세상 가장 완벽한

군인이었다고 칭송한다.

혼돈의 전장에서 모두가 갈팡질팡하고

찰나의 유혹에 휩쓸릴 때 노먼은

확고한 신념과 철학으로 무리를 이끌었다.

극단적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노먼은

인간 이상의 초월적 지위로

각 부대원들에게 각인된다.


특히 광분을 일삼는 폴(델로이 린도)은

노먼의 유족이자 광신도에 가까웠다.

그는 자신의 모든 삶을 증오하고

매일 밤 노먼의 악령에 시달렸으며

아내를 잃고 아들과 벽을 쌓는다.

폴은 모두를 의심하며 총구를 들이댔고

사익을 위해서라면 당장이라도 친구든 자식이든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페인 모자를 늘 쓰고 다닐 만큼

트럼프를 지지하고 베트남인을 증오했다.

그에게 베트남이란 영원한 전장이자

노먼을 죽게 한 원수들의 국가였다.


한참을 돌다가 숨겨놓은 다량의 금괴를 발견한

그들은 춤추며 환호한다.

하지만 여전히 그곳은 끝나지 않은 전장이었다.

지뢰 폭발과 총성이 다시 빗발친다.

블러드 중 한 명이 폭사하고

다수가 총에 맞으며 무리는 분열한다.

프랑스인이 사주한 베트남인들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고

총격전이 벌어지고 사상자가 속출한다.


폴의 극단성이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고

금을 둘러싼 총성은 다발적으로 울려 퍼진다.

많은 이들이 다시 죽고 다친다.

먼 과거, 존경하던 자를 죽게 했다는 죄책감이

끊임없는 환영과 환청에 휩싸이게 한다.

누구도 베트남전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 있지 못했다.

사과도 후회도 모두 너무 늦었다.

전쟁이 멈춘 곳과 전쟁이 여전한 곳에서

차별과 분쟁은 각기 다른 얼굴로 살벌하게

끊임없이 남은 자들의 팔다리를 해체하고 있었다.


흑인 인권을 위해 금을 사용하고 싶다는

노먼의 꿈은 결국 목적을 달성한다.

노먼은 운이 좋은 흑인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와 말콤 엑스 등은 여전히

그들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글 제목은 대사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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