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V 페라리, 과열과 굉음 속에서

제임스 맨골드 감독. 포드 V 페라리

by 백승권
FORD V FERRARI






승리에 대한 이야기는 많다. 그리고 포드 v 페라리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내 몰리(케이트리오나 발피)와 아들 피터(노아 주프), 최고의 동료 캐롤 셸비(맷 데이먼)를 곁에 두었던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라는 레이서, 한 인간에 대한 편집된 서사다.


레이스 최강의 경쟁자가 접전 끝에 날아가고 승리만이 남은 시점, 켄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모두의 예상을 깬 최고의 레이서로서, 역사에 기록될 영웅이 될 것인가. 최고의 동료 캐롤이 어렵게 이야기를 꺼낸 회사의 요구사항에 맞춘 홍보 자료가 될 것인가. 자동차가 가장 빨라졌을 때 남은 모든 것들은 느려진다는 이야기, 정점에 달한 속도계와 함께 흐려지는 소실점, 독보적인 승리자가 될 결승선을 얼마 앞둔 상황에서 켄은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뗀다. 페라리까지 무너뜨린 포드 GT의 속도가 줄어든다. 뒤에서 따라오는 남은 포드의 레이싱카들, 나란히 결승선에 들어온다. 그리고 켄은 그 경기의 우승자로 기록되지 못한다.


회사(포드)의 요구사항을 어렵게 수용함으로써 켄은 세일즈 홍보 자료의 일부만 된 게 아니라 우승자로서의 지위까지 빼앗긴 셈이 되었다. 이래서 자본주의는 낭만이 없다. 헤드라인만 남기고 개인의 생애를 모조리 지우니까. 당장이라도 폭발할듯한 자동차 기계 속에서 열기와 굉음, 압박과 몰입 속에서 -수년간 왕좌에서 군림하던 페라리를 뒤로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다수의 좌절과 단념, 싸움과 지저분함이 있었나.


과정에 들인 순수한 열정만 꺼내서 퉁치기엔 씁쓸하다. 늘 희생하고 양보하고 뒤로 물러서는 쪽은 개인이니까. 이번엔 켄, 그리고 캐롤이 그 개인이었다. 아니, 켄을 향한 헌신적인 신뢰를 쏟아붓는 아내 몰리, 아버지를 신의 지위처럼 따르는 켄의 아들 피터, 그리고 켄과 한 몸이 될 자동차를 완벽 그 이상의 머신으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날밤을 뜯고 고치는 엔지니어들까지, 그들의 모든 시간과 노력과 열정이 홍보 자료와 저울질하다가, 포드사 임원의 모략에 의해 날아간 셈이었다.


승리는 늘 승리 이상이 될 수밖에 없다. 순간을 넘어 영원히 회자될 수 있으니까. 인간들의 세계에서 절대다수에 의해 남은 생 내내 그 이후까지 최고로 회자된다는 것만큼 영예와 권력, 자부심과 감동, 보상, 위로까지 되는 선물은 드물 테니까. 타인들의 인정이라는 거울 속에서 자신을 비출 때마다 힘겨운 시간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끝내 트로피는 켄과 그의 사람들의 것이 되지 못했다. 이게 농담 같은 현실이자 기록으로 남은 역사.


하지만 태초로 돌아가 본다면, 켄 마일스는 일확천금을 노리고 열기와 굉음에 뛰어든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이 선택한 일과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끊임없이 고뇌하던 존재, 자본의 수렁이 유혹한다 해도 흔들리지 않을 사람, 자신이 권력자, 자본가들과 뼛속까지 다르다는 점을 체득한 사람, 그는 다시 황량한 트랙 위에서 완전하지 않은 차 안으로 몸을 구겨 넣는다. 극단까지 밀어붙이며 그 이상까지 성능을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근육과 신경을 곤두세운다. 모든 것을 걸었어도 완전히 무너진 상황 속에서도 먼지 털듯 일어나 다시 그 좁고 힘든 일을 반복한다. 마치 이렇게 살려고, 사명감을 지닌 채 태어나기라도 한 것처럼.


갑작스러운 죽음은 얼마나 허망한가. 폭탄 제거반도 소방관도 아닌데 모두를 남긴 채 이렇게 사라져도 되나. 남은 자들은 이걸 어떻게 받아들이며 살아갈 수 있나. 켄의 사망 후 그는 자동차 역사에 기록되어 만인의 기억 속에 영영 회자된다. 저 세상에서도 신의 사자들이 타고 다닐 자동차의 엔진 성능에 대해 불평하고 있을 것만 같다.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포드 v 페라리는 승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켄이라는 인물을 당대 현실이 어떻게 다뤘고, 역사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한 편의 가이드, 자동차라는 움직이는 기계에게 자신의 전부 이상을 투영했던 한 인간의 사생결단을 다룬 영상기록물이다. 눈앞의 모든 것들이 섬망처럼 번지는 시공간 속에서 무한의 고독감을 돌파하던 그의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빠른 존재가 되어 모든 것이 가장 느려질 수밖에 없었던 순간. 상상하던 자신보다 더 빠른 현실의 자신이 되던 그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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