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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di Oct 16. 2023

무능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2)

사회 생활이 그렇게 대단한 것도, 두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



4.

나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사실 7개월을 넘어가던 시점부터 매일 생각했던 일이지만, 정말 용기를 내어 실행에 옮기게 된 계기는 무척 사소했다. 당시에 나는 세븐틴이라는 아이돌 가수를 좋아했는데, 그들이 귓가에서 이렇게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하기 힘든 건 내일 해 그냥 해 달라 해 다음에 하면 돼
한번 사는 인생 멋지게 살자
응 응
하고 싶은 건
거침없이 다 해!



무대를 즐기는 세븐틴 부석순 (출처: OSEN)



그 가사를 들으면서 나는 그래...한 번 사는 인생인데...하고 거침없이 팀장님께 퇴사 면담 요청을 하게 된다. 팀장님은 공포에 떨며 회의실에 들어갔고, 나는 그날로 퇴사 예정자가 되었다.


첫 회사에서 일한 지 10개월이 되어가던 때가 나의 퇴사일이자 내가 다시 백수가 된 시점이었다. 나는 취직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도망가는 불명예자었지만, 내가 맡았던 일을 마무리하고 자잘하게 남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인수인계하는 예의 정도는 발휘했다. 마지막 근무 날 사람들은 내게 작별의 케이크와 선물을 주었다. 덕분에 나는 양손에 짐을 한 가득 들고 회사를 나섰다.


남들보다 이른 퇴근에 아직 해가 완전히 기울지 않아 거리가 노란 빛에 휩싸여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타는데 도망자들만이 느낄 수 있는 헛헛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이제 다시 여기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그 마음이 애틋하고 감미로웠다. 나는 백수다! 어딘가에 자랑하고 싶었다.


회사에 다닐 때 나는 사무실에 앉아서 무언가 중요한 것을 계속 놓치고 있다는 기분을 느꼈다. 집 안에 가만히 들어앉아 있게 되면, 더이상 왕복 세 시간을 길바닥에 버리지 않아도 된다면, 아침에 일어나고 밤에 잠들지 않아도 된다면 아주 많은 것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그랬을까?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나는 그런 믿음으로 백수 기간 동안 자잘한 일을 잔뜩 벌렸다. 백수 기간에는 ‘백수란 무엇인가’ 따위의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내가 원했던 만큼 중요한 것들을 잘 붙잡으며 지냈던 것 같지도 않다. 매일 아침 알람 소리 없이 눈을 뜨면서, 계속 어딘가로부터 도망치는 마음으로 지내면서, 여유롭지만 그렇게 즐겁지도 않은 하루들을 보내면서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자주 생각했다.


회사를 그만둘 때 나는 다시는 회사에 들어가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다. 어떻게든 회사원이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었다. 회사에는 온통 고통스러운 것들 뿐이었다. 모든 좋고 멋진 것들은 다 회사 바깥에 있었다. 사무실 안에 앉아 있으면 그 모든 것들을 다 잃어버릴 것 같아서 금방 초조해졌다.


그래서 사무실을 벗어나기만 하면 소설을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더욱 쓰지 못했다. 직장인 시절에 어떤 공모전에 내려고 대학 때 쓴 소설을 출퇴근 지하철에서 모바일로 고치고 덧붙이던 시기가 있었다. 백수 시절 나의 이야기 생산성은 당시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붙들고 있던 졸린 직장인보다 못했다.


나는 회사를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알바를 두어 개 찾았고, 자격증을 따기 위한 수업을 신청했고, 주변 사람들이 부탁한 이런저런 일들을 맡아 자잘한 돈을 벌었다. 마감이 있는 일들로 나를 옭아맸고 소설은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났다.


결국 바깥으로 나와서도 생계의 불안을 생각했다. 바깥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중요한 것들은 금세 잊고 엄밀히 말하면 백수가 아니라 취준생에 가까운 일상을 보냈다. 하지만 절대로 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싶진 않았다. 그 지칭에는 언젠가 ‘취직’이라는 정해진 목표를 달성할 거라는 확신이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무직으로 지내는 동안 내내 주변 사람들과 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나는 백수야’라고 말하면서, 내가 언젠가 일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걸 외면하려고 애썼다.

 

자격증 수업이 끝나고, 가치를 잘 알 수 없는 자격증을 하나 손에 넣게 된 나는 이제 정말 더이상 진로 고민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을 맞이했다. 그때까지도 소설 한 편을 완성하지 못했다는 자괴감도 함께였다.      




5.

그제서야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애써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회상의 한꺼풀을 벗겨 보았다. 내가 회사에서 일했던 시절, 대체 무엇이 나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는지.


그 고통에는 몇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가려내지 못했으나 지금은 목록까지 만들 수 있다.


1 : 일단 나는 회사생활이 처음이라 너무 겁에 질려 있었다. 쓸모 있게 굴어야 한다는 강박에 짓눌렸다. 그럴 것까진 없었다. 계약직 신입에게 사람들이 뭘 바란다고. 성실하게만 임하면 됐을 것을.


2 : 그리고 실제로 그 회사에 일이 많았다.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경력자들이 줄줄이 퇴사했고 남은 사람들이 남은 일을 다 떠안았다. 아마 그들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3 : 상기의 이유로 우리 팀에는 팀장을 제외하고 경력자가 딱 한 명 있었다. 그는 별로 친절한 사수는 아니었다. 친절하기 힘든 환경이었다고도 생각한다. 친절했다면 내게 큰 도움이 됐겠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해서 누굴 탓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


4 : 그리고 내가 거기서 했던 일은 사실 별로 내 적성에 안 맞았다. 아무 데나 이력서를 내 놓고 뭘 바랄까?


5 : 무엇보다 그 회사는 너무 멀었다. 버스 한 번, 지하철 두 번, 마을 버스 한 번, 도합 한시간 반의 출퇴근 시간으로 인해 내 인지 능력과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진짜로. 나약한 서울 시민이라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지방 초중고 12년에 서울에서 다닌 대학교 4년까지 평생 직주근접의 특혜를 받으며 살아온 사람이므로....


6 : 마지막으로, 나는 어려서부터 일의 세계로 들어가는 행위에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을 대학 때 일기장에나 휘갈겨 쓰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공포의 밑바닥을 파헤치다가 문득 다시 그 기억을 마주했다.


부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회사에서 정리 해고를 당한 후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지방으로 가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항상 새벽에 일어났고 열심히 일했다. 그것을 너무 오랫동안 반복한 탓에 그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새벽이 되면 눈이 뜨이는 주박에 걸렸다. 그 절박한 성실에는 불안과 공포가 있었다.


부는 그때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고 가끔 말했다. 절벽에 서 있는 자의 등 뒤로 생계가 쫓아온다. 그의 무력한 등을 밀어 버리려고 창백한 두 손을 내밀고.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일의 세계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 그 땅 끝에 서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부는 어린 나에게 세상이 얼마나 엄혹한 곳인지 말해주곤 했다. 그는 절벽에서 자신의 새끼를 떨어뜨리는 사자의 비유를 들었다. 야생의 잔혹함을 아는 사자는 새끼를 품 속에 싸고 도는 대신 새끼가 한 마리의 당당한 사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절벽 끝에서 밀어 버린다고 한다.


사자의 이름을 빌렸지만 그 이야기는 인간의 믿음을 담고 있었다. 그 이야기 속에서 세상은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서 살아남아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내가 쓸모없어지는 순간 나의 등을 밀어 버리기 위해 달려오는 두 손이 지척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 죽어요. (출처: 딜리헙 탄두리 프로젝트)




그 이야기를 끔찍하게 싫어했지만, 끔찍하게 싫어하는 것들이 으레 그렇듯이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를 상상하는 중요한 관점으로 자리잡고 말았다. 세계는 새끼 사자를 절벽으로 밀어서 떨어뜨리는 공간이었고 절벽에서 떨어진 새끼 사자는 죽게 되었다. 사자는 제 새끼가 더 강인한 사자로 자라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절벽에서 떨어지는 입장으로서는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가능성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도 죽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먹여 살리지 못할 것이다.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돈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 내 어린 시절을 통째로 지배하는 거대한 열등감이었다. 불완전해도 괜찮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불완전한 존재로 살아가는 동안 계속 한번도 멈추지 않고.




...


로라

-생애 두 번째 회사에서 직장 생활 중
-소설 쓰기를 좋아함
-<판을 까는 여자들> 공동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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