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떼구르르꺄르르 Aug 14. 2022

일주일 뒤 내가 죽는다면?

메멘토 모리 (2)


일주일 뒤 내가 죽는다면, 나는 무엇을 할까? 상상이 생각보다 잘 되지 않는다. 자유 연상을 시작.



출근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일주일 뒤 죽는다 하더라도 주어진 내 일에 충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게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폭우에도 출근하는 K직장인의 마인드가 나에게도 있었다니.


아무래도 나는 이 일에 끌림은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마지막으로 불사 질러보겠다는 생각을 좀처럼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는 생각은, 원래 내가 하기로 했던 일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민폐라는 것. 그래서 남은 1주일은 내가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도 민폐가 되지 않게 내가 너무 많은 일들을 맡지 않고, 다른 사람이 받아도 이해가 쉽게 기록을 잘해두어야겠다.


그리고 뭔가 더 친절해지지 않을까. 어차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 내 에너지가 친절에 쓰인다 해도 손해 볼 것 없으니까. 난 친절에 박한 경향이 있다. 호의, 친절, 배려. 이런 것들에 너무 계산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싶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죽은 이의 흔적은 생각보다 유쾌하지 않았다. 나를 대입하면 훨씬 더 생각하기 싫고 민망할 것 같고 모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주변인 중에 갑작스럽게 명을 달리 한 분이 계셨다. 그야말로 돌연사였다.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었다. 이해하기 힘든 죽음이었기에 그분은 자기가 떠난 본인의 터전을 그대로 여러 사람에게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다. 법으로 정해진 절차들이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종종 자기 전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주변을 정리하곤 한다.


누가 내가 산 자리를 정리하려고 온다면? 지금 내 물건들은 너무 많다. 많이 버려야겠다. 쓰지도 않는 물건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갑자기 떠나면 그 물건을 버리는 일까지 남들이 해야 한다. 일부는 가족이 직접 하면서 마음 아플 수도 있고 일부는 혹은 대다수는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무심하게 이뤄질 수도 있다. 내 소유의 물건들을 가볍게 해야겠다.




무언가 더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빼야겠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나에게 많은 것들이 얽매여 있다. 일이든 물건이든. 나를 가볍게 만들고 싶다. 어지러운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한 상태이고 싶다. 물리적으로 가벼워지면 좀 더 자유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뭐든지 더 자신 있어질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이 내다 버려야 한다. 버리는 행위. 그동안 나는 버리는 것에 참 인색했구나. 무엇인지도 모를 것을 채우기 위해 무엇인가를 계속 사모으기만 했다. 잔고도 남지 않고 마음도 채워지지 않았다. 정리를 많이 하면 그만큼 마음이 후련해질 것만 같다. 이제 물건을 들이는 행동에 많이 신중해야겠다.




이 생각의 기저에는 "남들이 봤을 때, (이미 세상에 없을) 내가 느낄 참담한 기분"이 깔려있다. 남에게 보일 내 모습을 내가 정하고 싶다는 완벽주의. 문득 내가 안쓰럽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과연 어쩔 수 있는지? 가능한 일이겠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무얼 해야겠다는 추진력을 조금 얻었다. 버림. 친절. 두 가지는 확실한 것 같다. 마지막 생각 꼭지는 좀 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이런 나도 나니까 받아들여줘야겠다 싶다가도 뭔가 씁쓸하기 때문에.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