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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떼구르르꺄르르 May 17. 2022

행복은 강도인가 빈도인가

생각해서 무엇하리, 답이 없는 질문인걸


최근 읽은 책 두 권에 연속해서 같은 문장을 만났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이런 무릎을 탁 칠 명문을 보았나. 두권이나 연속해서 나올 정도면 이 문장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을까.


과연 이 문장이 어디에서 왔는지 자연스럽게 궁금하잖아. 그래서 검색해봤지. 그런데, 이 말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페이지를 발견했다. 순간의 기분들보다 삶의 목적이 중요하다는 거다. 그 말이 왜 거북한지. 삶의 목적 운운하는 거룩한 이야기가 왜 외국어같이 들리는지.


요즘 나는 강도보다는 빈도에 노력하고 있다. 소소한 기쁨들로 하루를 채워보려 한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을 잠시 느낀다던지, 점심 식사 후 동료와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하늘을 문득 보면 보이는 나뭇잎들의 댄스를 감상한다던지. 출퇴근을 굳이 걸어서 하면서 몇천보를 적립한다던지. 마녀 체력 농구부를 보면서 실컷 응원한다던지.


강도가 중요하다는 말에 내가 거부감을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듯. 작은 기쁨도 느낄 줄을 모르는데 삶의 목적이 무슨 배부른 소리람. 내가 모으고 있는 기쁨의 빈도들을 모아보니 나는 지금 아직 강도를 즐길 레벨이 덜 되었다.  행복할 기초가 아직 덜 된 행복 초보. 행복에 흥미가 없어서 영어에 노출시키듯 행복에 노출하는 단계.


"마일드한 우울증".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이 맴돈다. 가라앉은 기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디폴트인데 이걸 바꿀 수 있을까? 이 마일드한 우울증에서 벗어나면 삶의 목적이라는 게 갑자기 짠 하고 생기고 삶의 의욕이 화수분처럼 솟아나서 삶이 막 아름다워 보이고 눈부셔 눈을 못 뜨게 될까.


행복에 대해 생각하면서도 냉소적이게 되는 나. 이만하면 나의 종특 아닌가 싶다. 지금으로서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강도가 높은 행복이 절대 싫다는 게 아니다. 그저 나에게 올 것 같지 않은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거다. 그래도 감은 맛있으니까, 빨갛게 익혀서 홍시 모아뒀다가 인생의 추운 겨울에 꺼내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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