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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Oct 06. 2023

야너두 (카페인 끊을 수 있어)

탐 스태포드/매트 웹 <마인드 해킹>

… 우리는 이제 곧 카페인을 섭취할 것임을 알고 있기만 해도 활기가 도는 경향이 있다. 이때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것은 단순히 이 화학물질만이 아니다. 이것을 실제로 경험해 보기 위해 주변에서 알아주는 카페인 중독자를 찾아보라. 그 사람이 차에 빠져 있건 커피에 빠져 있건 상관없다. 빠져있기만 하면 된다. 장담하건대 그 사람은 차 또는 커피를 준비하는 절차에 관해서도 꽤 유별난 사람일 것이다. 특별히 아끼는 머그잔이 있지는 않은가? 차보다 우유를 먼저 따르기를 좋아하지는 않는가? 커피콩을 어떻게 갈아야 할지 까다롭게 따지지는 않는가?


(중략)


그 사람이 카페인에 빠져 있을수록 음료를 준비해서 내놓는 특별한 방식에 더욱 까다롭게 굴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 사람이 중독된 것은 복합분자다. 이 물질이 어떤 방식으로든 몸에 들어가기만 하면 이 약물의 긍정적 효과가 나타나고 관련된 금단 증상이 사라질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은 그것이 몸으로 들어가는 특별한 절차와 방식을 고집한다. 왜 그럴까?


(중략)


여러분은 아마도 파블로프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은 개를 가지고 실험하여 고전적 조건형성의 기본 원리를 확립한 러시아 과학자다. … 어떤 것을 보상과 동시에 제시하면 이것이 보상 자극에 대한 반응과 연합되고 결국에는 보상 자극을 대체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는 카페인이 그 자체로 보상 자극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것이 (냄새, 맛, 컵, 하루동안에 마시는 시각 등등이) 이 보상과 연합된다. (특히 그것이 카페인 없는 커피임을 모를 때 그러한데, 이것은 위약 효과 때문이다.) 또 내가 커피를 준비하기만 하고 마시지 않아도 정신이 드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중략)


… 심리학자들은 시간 척도, 제약 조건, 이 두 학습 형태의 상호작용 따위가 자극과 반응 또는 보상과 처벌의 다양한 조합과 어떻게 관련되는지 수십 년을 탐구해 왔다. 예를 들어 보상이 처벌보다 더 나은 동기부여 작용을 할 때가 많은데, 이것의 한 이유는 보상이 처벌보다 더 정교하기 때문이다. 보상의 경우에는 그냥 우리가 원하는 행동을 보상하면 된다. 그러나 처벌의 경우에는 우리가 원치 않는 행동만 처벌하기보다 싸잡아서 처벌하는 경향이 있다.


-탐 스태포드, 매트 웹, 최호영 역, <마인드 해킹>, 황금부엉이, 465~7


이 글은 성인이 된 이후로 커피중독자로 살아온 내가 위가 급격히 안 좋아진 이후로 일 년 가까이 카페인을 완전히 끊거나, 디카페인 커피에 거의 정착하다시피 한 내 상황을 씁쓸하고도 흥미롭게 돌아보게 한다. 처음 디카페인을 마셨을 때의 상황 즉 디카페인 커피에는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다는 슬픈 사실에 몰두한 채 마셨을 때와 더 이상 그것에 크게 신경 쓰고 있지 않은 요즘의 디카페인 커피의 맛은 매우 다르다. (카페인이 제거되었다는 것에 신경 쓰고 마실 때는 양잿물 맛-양잿물 마셔본 적 없음-이 났지만, 지금은 그냥 커피 맛) 처음부터 모르고 마셨으면 어땠을지 너무 궁금하다. (혹은 내 주변의 카페인 중독자들을 속이고 테스트를 해보고 싶다. 과연 그들은 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인가?) 놀랍게도 카페인이 들어있지 않은 커피를 마셔도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각성효과가 있다(고 착각한다). 알고 마시는데도 위약효과가 발휘될 수 있을까? 매 순간 의식하지 않는다면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커피물을 준비하고, 원두를 준비하고, 늘 마시던 머그에 커피를 담아 마시는 그 절차만으로도 이전의 만족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의식이 완성된다. 그 오랜 시절 아침에 진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잠도 깨지 않고 뇌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무겁던 것은 모두 착각이었단 말인가? 조건 보상에 자동적으로 반응하는 나 자신이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다.


​나의 혈육은 불면증과 두통이 심한데도 카페인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내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는 것을 매우 놀라워하며 지켜보고 있다. 어떻게 네가 카페인을 포기할 수가 있어…? 이런 반응을 보고 나서야 카페인 중독자들에게 중독에서 벗어난 사람이 어떻게 보이는지 깨달았고, 담배를 끊는 것과 카페인을 끊는 것은 얼마나 비슷하고 또 얼마나 다를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커피의 경우 디카페인이라는 유사보상이 가능하기 때문에 난이도에서 비교가 안 되는 것 같다. 물론 위가 상당히 아픈 식의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기는 하다.


​여전히, 카페인을 실컷 접하고도 튼튼한 육체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부럽기는 하다. 알코올도 마찬가지긴 한데, 어느 정도 건강상의 이점을 제공하는 카페인과 달리 알코올은 담배만큼이나 건강에 해악을 끼친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크게 부럽지는 않다. 그늘에 앉아있으면 땀을 말리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초여름의 오후에 마시는 맥주 한 모금, 혹은 봄날의 저녁에 식사를 준비하면서 마시는 리슬링 한 잔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나 그렇게 마시기 시작하면 욕망의 되먹임이 한 모금과 한 잔으로 만족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여전히 술을 입에 대지 않고 있다. 다만 아침에 디카페인이 아닌 에스프레소 한 잔 정도는 이제 허용하는 것이 어떨까 고민하는 중이다. 나의 얇고 예민한 위벽아, 그 정도는 괜찮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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