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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Sep 23. 2024

바보야 문제는 좌뇌 우뇌가 아니야 구피질 신피질이지

 제프 호킨스, <천 개의 뇌>


… 나는 언젠가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뇌의 작용 방식을 배우길 바란다. 이것은 “오, 네게도 뇌가 있어? 그렇다면 뇌에 관해 꼭 알아야 할 게 여기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모두가 알아야 할 지식의 목록은 짧다. 나는 이 목록에 뇌가 어떻게 새로운 부분과 오래된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설명을 포함시킬 것이다. 신피질이 세계 모형을 배우는 반면, 오래된 부분은 우리의 감정과 더 원시적인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내용도 포함시킬 것이다. 오래된 뇌가 통제력을 장악하면, 우리가 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는 행동을 우리에게 하게 한다는 내용도 포함시킬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왜 틀린 신념에 빠지기 쉬운지, 그리고 일부 신념이 어떻게 바이러스성이 되는지 설명하는 내용도 포함시킬 것이다. (중략) 우리가 직면한 문제 중 많은 것(전쟁에서부터 기후변화에 이르기까지)은 오래된 뇌의 틀린 신념이나 이기적 욕망 또는 둘의 결합이 만들어낸 것이다.

- 제프 호킨스, <천 개의 뇌>, 이충호 역, 이데아, 351~2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앞부분은 ‘천 개의 뇌 이론’에 대한 최대한 쉽고도 간략한 설명으로 구성되어 있고, 뒷부분은 이에 대한 응용 편으로 인공지능에 대한 전망과 오래된 뇌가 불러일으킨 각종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기대했던 것은 앞부분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는 별개로) 조금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다뤄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호킨스 선생은 전문성을 양보하고 대중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 이유는 위의 인용문에서 밝히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고도 소개하고 싶은 많은 내용들 중에서도 저 위의 문장을 첫 인용으로 선택한 것은 이 책을 쓴 이유를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저렇게까지 일목요연하게 직접 책의 내용을 요약해 주는 것을 보며 살짝 웃음도 나오고 한편으로는 그 절박함에 한숨도 나왔다. 인간이 원시적 뇌의 욕망을 충실히 따른 결과 직면하고 있는 현실이 참담하다는 것은 다들 알 것이다. 마치 그 문제들이 자신은 비껴갈 것이라는 착각 속에 대부분 안주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말이다. 이 문제의식은 이전에 소개한 슈테르처의 <제정신이라는 착각>과 거의 정확하게 일치한다. 전반부의 접근 방식이 달라도 책의 후반부는 너무 유사해서 놀라울 정도였다.

… 내가 신피질과 세계 지도 사이의 유사성을 지적한 이야기를 떠올려보라. 지도는 우리가 있는 장소에서 원하는 장소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만약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리고 다양한 장소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를 알려준다. 하지만 지도 자체는 동기가 전혀 없다. 지도는 어떤 곳에 가고 싶은 욕구가 없으며, 자발적으로 목표나 야심을 만들지도 않는다. 신피질 역시 마찬가지다.

(중략) 오래된 뇌는 호랑이를 위험과 연관 짓는다. ’호랑이’라는 단어를 듣자마자 즉각 행동에 돌입한다. 혈액 속으로 화학 물질을 분비해 심장 박동을 빠르게 하고 두려움과 관련된 그 밖의 생리적 효과를 촉발한다.

-위의 책 222

대충 요약하자면 인간의 뇌는 두 부분-오래된 뇌(편도체, 해마 등의 변연계)와 이후에 추가된 신피질로 나눠 볼 수 있는데, 천 개의 뇌 이론은 신피질의 작용 방식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피질의 기둥들이 위계 없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식을 도출해 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제정신이라는 착각>에서도 다룬 바 있는 의식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데, 바로 ‘기준틀’에 관련된 것이다. 신피질이 하는 일의 대부분은 예측이며,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비교 대상 즉 기준틀이 필요한데, 신피질의 ‘모든 피질 기둥’에 기준틀의 위치를 나타내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주장이다. (인간의 뇌가 입력-출력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 기준틀을 학습한 후에는 오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신속하게 작동한다는 것 또한 슈테르처의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뤘던 지점이다. 두 책을 연달아 읽은 것은 꽤나 행운이었다.)

 

​이 책이 너무 쉽게 잘 읽힌다는 생각에 전문성을 포기 운운한 것을 책을 요약하며 매우 후회하고 있다. 그리고 이토록 재미있고도 쉽게 쓰는 저자의 글 쓰는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왜 이런 천재들은 글조차 잘 쓰는 것일까… 글조차 잘 써서 나 같은 평범한 인간도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최신의 뇌 이론들을 접할 수 있으니 감사할 일이다. 뇌 이론을 다룬 최신 출간된 책들 중 가장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게다가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력을 지닌 내용을 담은) 책이다. 호킨스 씨의 바람대로 공룡이 왜 멸종했는지에만 관심 갖지 말고 이 책을 많이들 읽어서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하면서 사시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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