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이는 30대 초반의 여성이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잠깐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집에 남편을 남겨둔 채. 공항에서 한국의 담배를 잔뜩 사들고 왔다며 방을 안내해 주는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피우겠냐고 묻길래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답하자 자신도 끊었다고 답하더니 한 갑 챙겨서 계단을 내려갔다. 돌아온 그이에게서 담배 냄새가 났다.
딱 한 달. 그이가 그곳에 머문 시간이다. 그는 파리 근교인 오베르와 베르사유에 다녀온 것을 제외하면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밤이면 근처 마트에서 와인을 사다가 마셨고 낮에는 근처 공원에서 낮잠을 자고 왔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 소매치기당하지 않아요.” 그는 그날마다 필요한 돈을 읽고 있는 책에 끼우고, 그 책을 손에 들거나 겨드랑이에 끼고 다녔다. 그 외 다른 필요한 것들은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녔다. 평범한 여행객들과는 달리 사진도 거의 찍지 않는 듯했다. 일주일 이상 장기 숙박 중인 다른 여행객들에게 그는 화제의 대상이었다. 저럴 거면 왜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가 풍기는 남다른 여유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었지만 감히 흉내 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바쁘게 돌아다녔다. 누군가는 쇼핑을 위해, 누군가는 가성비 높은 여행을 위해. 하루 만에 런던을 찍고 파리로 돌아왔다는 젊은 남자 여행자들의 자랑에 그이는 놀랍다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경탄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이기도 했지만 부러워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그의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가 읽는 책, 그가 마시는 와인, 그가 가는 공원, 그가 사 오는 바게트, 그가 듣는 음악. 그는 당연하다는 듯 기꺼이 그것들을 나와 함께 나눴다. 그는 조식을 먹은 후에 어슬렁거리는 척 내 일을 도왔다. 그의 도움으로 일을 빠르게 마친 날이면 함께 공원에 가서 방브의 벼룩시장에서 사 온 리넨을 깔고 그 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잤다. 그 시간은 마치 영원과도 같이 느껴졌다.
밤이 되고 하루의 노동이 대충 끝나면 그이가 근처 마트에서 와인을 사 왔다. 초반에는 그이와 나, 우리 둘 뿐이었던 테이블에 파리가 좋아서 일 년 살이를 준비 중이라는 또 다른 여자 장기투숙객이 은근슬쩍 합류했다. “파리가 좋긴 좋은데 좀 지겨웠던 참이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이 사 온 와인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그와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누군가와 나눌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관리하는 내가 숙박객들의 참여를 제한할 수는 없었다. 나는 조용히, 사람들의 대화에 가끔씩 한 마디씩 보태는 그의 말에 귀 기울였고, 그의 얼굴을 바라봤다. 가끔씩 눈이 마주치면 그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이고는 내 얼굴을 바라보고는 했다. 그가 입고 있는 가죽 재킷 위로 흩어진 그의 긴 머리카락을 정리해주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견뎌야 했다. 나조차도 설명할 수 없는 나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그가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 그가 되고 싶은 내 마음을, 속속들이 하나가 되고 싶은 심장이 터질 듯한 열망을. 그걸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동경? 사랑? 세상에 있는 어떤 단어로도 요약되거나 설명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의 마음을ㅡ 들키기 전에 그의 고백을 받았다.
은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