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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월의쥰 Sep 29. 2024

29. 아련한 방탕의 기억  


“파리에서의 이야기를 사제 수업을 받고 있는 아퀴나스에게 편지로 써서 보내기 시작했다는 얘기까지 했어요.”


카페 사장과 나는 문 닫은 카페 안에서 와인을 마시는 중이다. 카페를 마감하고 있던 중 퇴근했던 사장이 다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한 손에 막 가방에서 꺼낸 와인병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그와 술자리를 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나는 괜히 마음이 설렜다.


와인을 한 모금 마신 카페 사장이 한동안 멈췄던 옛 소설 이야기를 계속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는 기억을 애써 더듬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내용을 소환 중이다. 아무리 기억을 짜낸다고 한들 정확하게 기억이 날 리 만무하다.

“그러니까… 음, 그렇죠. 그렇게 그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며 겪었던 일들을 이리저리 엮은 내용을 편지로 써서 보내기 시작해요. 아퀴나스로부터 답장은 거의 오지 않다시피 했지만 은이는 상관하지 않아요. 어차피 한 번은 그 경험을 글로 써봐야겠다 생각했었고, 아퀴나스에게 쓰는 편지의 내용이 모두 사실도 아니었죠. 적당히 사실과 허구를 섞어서 쓰기 시작했고, 나중에 그 내용을 엮어서 책으로 내게 되거든요.”

“은이가요?”

“네. 한참만에 답장을 보내온 아퀴나스가 너무 재미있다면서 그 내용을 출판사 하는 선배에게 들려줘도 되겠느냐고 물어봐요. 은이가 허락하고, 책이 한 권 뚝딱 만들어지죠.”

“오, 은이가 작가가 되는군요.”

“네. 하지만 책은 별 인기 없이 그냥 초판 출간 이후로 사라져요. 증정이라든가 하는 것을 빼고 순수하게 팔린 것만으로는 열다섯 권이나 될까… 그런데 그중 책을 재미있게 읽은 일곱 명의 독자들이 어찌어찌 그들끼리 연락이 되어 팬클럽을 만들게 되죠.”

“그게 가능한가요?” 카페 사장이 너털웃음을 웃으며 물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알 게 뭐예요? 소설일 뿐인데요. 심지어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명목으로 다 같이 만나기도 해요.”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본인의 희망을 반영한 대목일까요?”

“맞아요. 은이를 통한 대리 만족이었어요.” 나는 반쯤은 민망하고 반쯤은 통쾌한 이상한 기분으로 크게 웃었다. 사장도 나를 따라 크게 웃었다.

“좋네요. 그 소설의 내용이 너무 궁금한데요?”

“그게… 정말 그것까지는 기억이 안 나요.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을 내가 썼던가? 실은 그것부터도 이미 잘 기억이 나지 않는걸요.”

“아, 너무 아쉬워요.”

“아쉬워하지 마세요. 이렇게까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분명 소설 속 소설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쓰지는 않았을 거예요.”


카페 사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자기는 파리에서 뭐 재미있는 일 없었어요?”

“저요?”

“응. 한 달 정도 있었다면서요. 특별히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이 있었나 궁금해요.”

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생각을 해봤지만 딱히 인상적인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기본적인 것은 은이랑 비슷하고… 예를 들어 밤마다 와인을 마신다든가 하는 것이요. 아, 길거리를 걸으면서 담배를 자주 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욕먹을 일인데 그때는 그 행위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해방감이 있었거든요. 사실 흡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그냥 폈어요. 그래서 체류 기간 내내 목이 아팠고요. 목도 상하고, 와인 때문에 이는 검은색이 되고, 간도 좋아지지 않았죠. 음…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좋았다?”

“네. 이런 시간은 내 삶을 통틀어 지금이 유일할 것이라는 인식이 있었어요. 방탕해도 돼. 어차피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그렇게 생각했으려나? 아니, 그런 의식조차 하지 않고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던 것 같아요.”

사장이 내 얼굴을 아련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나는 왜인지 쑥스러운 기분이 되어 눈을 내리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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