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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엠 Sep 11. 2020

(29) 예술가의 영감님을 찾아서

압생트는 19-20세기 유럽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에게 사랑받은 술입니다. 향쑥을 원료로 만든 이 초록색 알콜은 그 색과 강렬한 맛, 그리고 원료에 포함되어있던 환각성분으로 당시 많은 예술가들의 창작의 연료가 되어주었습니다. 압생트를 마시기 위한 전용 스푼과 잔이 있을 정도니 이 술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짐작이 갑니다. 소름끼치도록 투명한 초록색으로 빛나는 술잔에 각설탕을 녹여가며 물을 부으면, 초록 빛은 사라지고 뿌연 액체만이 글라스에 남습니다. 이 화려한 변화와 혀에 남는 강렬한 맛은 예술가들에게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Viencent van Gogh: Café Table with Absinthe (Van Gogh Museum, 1887)




예술가는 언제나 끊임없이 자극을 찾습니다. 때로는 불법의 영역까지 들어가는 자극일지라도요. 예술가가 벼슬도 아니고 사실 예술가 할아버지가 와도 불법적인 환락은 당연히 허락이 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예술가들은 영감을 위해서라면 불법의 위험도 고사하고 꿋꿋하게 자극을 찾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마약이 있겠네요. 옛부터 지금까지 마약을 한 예술가를 언급하라 하면 이름만으로도 책 한 권 분량이 나올 겁니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예시를 들라 하면 역시 비틀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에는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라는 노래가 수록되어있습니다. 강력한 환각제인 LSD를 이용한 말장난이죠. 



비틀즈의 Sgt. Pepper's Lonley Hearts Club Band 앨범 커버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LSD같은 마약은 록밴드의 필수품과 같았습니다. 60-70년대 유행하던 사이키델릭 록이 묘한 몽롱한 느낌을 주는 건 어쩌면 실제 경험을 음악으로 재현해서일지도 모릅니다. 


록밴드 뿐만이 아니라 그 유명한 철학자 미셀 푸코도 LSD를 했고, 셜록 홈즈에서 셜록이 두뇌 회전을 위해 각성제인 코카인을 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법으로 엄격하게 금지가 되기 전까지 각종 마약은 문단과 학계, 예술계에서 심심치 않게 쓰였습니다.


물론 현대 버전의 셜록은 코카인을 하지 않습니다. 대신 니코틴 패치를 붙이죠.





사람들은 예술가의 일탈에 관대합니다. 예술가들의 온갖 기행은 예술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쉽게 용납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말 예술은 영감을 위한 일탈과 기행이 있어야지만 나올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다 생각합니다. 예술가로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 요소는 일탈과 자극이 아닌, 공부와 운빨입니다. 


예술가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 없이 공부를 해야합니다. 이전의 개념과 컨셉을 아무런 답습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예술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공부가 필수불가결합니다. 영향을 받았다 해도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예술에 적용했는지를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면 창작이 아닌 그저 진부하기만 한 재생산이 되어버립니다. 하물며 이전에 없던 예술을 만들고싶다 해도 공부를 해야합니다. 새로운 컨셉과 재료를 찾기 위해선 그만큼 재료와 오브제, 개념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있어야지만 가능하니까요. 흔히들 이런 걸 예술가의 안목이라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안목은 생기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수많은 경험과 지식이 예술과 그와 관련된 요소들로 전달되어 표현된 결과,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예술가의 안목입니다. 



예술가의 공부의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조르지오 바사리(Giorgio Vasari)의 미술가 열전을 들 수 있겠네요. 


그러나 지식과 경험, 안목만으로 예술가로써 먹고살 수 있다고 감히 확신할 수는 없겠습니다. 솔직히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 언제나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결정적인 요소는 운빨이니까요. 예술가가 자신의 삶의 길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달라집니다. 운빨 보다는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많다'는 표현이 더 맞겠습니다. 예술가로서의 삶을 결정짓는 선택을 하는 매 순간이 다가올 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선택의 순간을 마주칠까요. 예술을 하지 않는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겠다, 어렴풋이 예상합니다. 어쩌면 예술가의 일탈과 기행은 영감을 찾는 과정이 아닌, 선택의 중압감을 피하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비틀즈가 본격적으로 대놓고 약을 빨았던 시기는 밴드 내 불화가 컸던 시기니까요. 또는 선택을 할 때 조금이라도 용기를 북돋기 위해서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아무리 그렇다 해도 합법의 영역을 넘어서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술가의 이름으로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행위를 하고 예술가라는 이유로 용서받으려는 짓거리도 있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까지 해야 예술을 할 수 있다면, 애초에 예술을 할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라고 스스로 증명하는 꼴 밖에 안됩니다. 예술가의 영감님은, 일탈이 아닌 그동안 예술가의 인생을 만든 공부와 선택의 결과니까요. 




썸네일 이미지: Photo by Ian William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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