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운 삶, 그리고 취미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단순히 숨쉬고 먹고 자고 하는 걸로 ‘살아있음'을 증명하기에 우리의 인생은 너무 깁니다. 먹고 자고 하는 일도 ‘인간 답기' 위해서는 생존 이상의 퀄리티가 필요하다고, 저번 턴에 가연성 씨와 리즈 씨의 글에서 나왔죠. 저는 거기에 덧붙여서, 보다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그동안 온 인류가 정성스레 아껴왔던 또 하나의 요소에 대해 얘기하고자합니다. 바로 ‘취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취미활동'에 대한 기록은 인류의 발자취가 시작된 지점부터 함께합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문자 시대 이전의 인류의 흔적은 곧 취미생활의 흔적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취미 생활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인류의 기원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인류 최초의 동굴벽화라 불리는 라스코 동굴벽화에는 지금 우리가 봐도 뛰어나다고 생각될만한 묘사력으로 그려진 동물들의 그림이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그림은 누가, 아니 그전에 왜 그렸을까요. 이에 대한 고고학자들의 다양한 추측이 있지만, 저의 경우는 이런 생각이 가장 먼저 듭니다. ‘이걸 그릴 시간이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한 일 외의 활동을 해왔습니다. 하다 못해 생존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노래와 춤 등의 유흥 활동을 하였습니다. 농사일 할 때 부르는 노동요나 선원들이 노를 저으며 부르는 노래가 이에 해당하겠네요. 더 나아가 사회 체계와 경제가 발전하여 남는 게 시간 밖에 없게 된 양반들은 그 길고 무료한 시간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고대 그리스의 문자/비문자 유산이 많이 남아있는 까닭은 이 때문이 아닐까요. 생존을 위한 생산은 생존을 위해 소비되고 사라지지만 취미를 위한 생산과 그 결과물은 지금까지도 남아있습니다.
시간과 돈이 많은 자들의 여흥의 흔적은 전 인류의 역사에 걸쳐 수없이 많은 형태로 남아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물화'는 각별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정물화를 과거판 인스타그램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종이와 안료 값이 서민들 한 달 밀가루 값 보다 훨씬 비쌌을 시기에 그런 재료를 써서 그린다는 게 먹는 것 아님 사냥한 것들이잖아요. 가끔 자기 정원에서 난 꽃이나 애완동물도 자랑하고요. 정물화는 돈과 시간이 넘쳐나는 자들의 자기 일상 자랑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부르디외는 취미는 계급의 지표라고 하였습니다. 취미는 계급의 구조를 드러냄과 동시에 재생산한다는 게 부르디외의 취미에 대한 견해의 요지입니다. 단순히 욕구나 감정에 의한 결과물이라 단정짓기에 취미 활동의 유산들은 그 취미활동을 즐겼던 사람들의 집합점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정물화 뿐 만이 아니라, 인류가 남긴 무수한 취미활동의 결과들은 그 당시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있었는지를 드러냅니다.
부르디외가 말한 바와 같이 ‘취미'의 영역은 사회적, 경제적 위치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나 어느 계급이 취미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즐기는 취미의 종류는 다를지라도 취미 그 자체는 계급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 안에서 존재해왔습니다. 누군가는 사치라 말하고 누군가는 생존에 필요 없는 불순물 취급을 하지만, 취미는 오랜 시간동안 ‘인간'을 만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물과 빵 만이 아니라 때로는 홍차와 케이크도 필요합니다. 이 경험과 습관이 쌓여서 취미를 만들고, 쌓여진 취미는 인류의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런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지금의 인류는 존재할지라도 과거와 미래의 인류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봅시다.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네요. 취미가 보장되는 삶. 그래서 나 자신 뿐만이 아닌, 과거와 미래의 인류를 이어나가는 삶. 당신의 여유를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지금의 당신의 취미는 인류를 만들어나가는 위대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