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일랜드는 Halloween(할로윈) 발상지답게 곳곳마다 할로윈 장식이 가득하다. 할로윈은 Celtic(켈틱) 문화의 하나로서 여름이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는 Samhain(삼하인) 축제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과 합해진 것이 기원의 정설이다.
그 기원의 장소가 아일랜드이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Famine(대기근) 때 여러 나라로 이주하면서 전파되었다. 이미 내가 있는 Maynooth(메이누스)를 비롯한 각 대학교에선 목요일에 축제가 시작되었다. 금요일부터 할로윈 방학이 시작되었고, 각자 그 기간 동안 Reading Week(시험준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말이 방학이지 다음 주부터 시험이 시작되기에 10월의 마지막 날을 불태우고, 각자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물론 I am 현지인보다 영어가 부족하고, 진도 따라가기가 벅차기에 I am 이미 시험준비 모드이다.
일상의 평화로움이 타성에 젖게 되는 순간
그 평범함은 어느새 단조로움으로 변하고
새로운 리프레쉬를 갈망하게 된다.
그런데 가장 손쉽게 그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바로 시험준비기간이 아닐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만 앞두고 나면 그렇게 하고 싶어 지는 게 많아지고 쓸데없는 생각이 주마간산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남들보다 오랜 대학생활을 해서인지 시험이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지만, 시험은 나 자신을 겸손되게 만들고지루했던 일상을 다시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맑은 하늘 새들의 노랫소리는 머릿속에 이해 안 되는 영어 문장을 쑤셔 넣으며, 인내심에 극한을 향해 달려가던 내게 방구석을 나가게 만들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지 않고 나왔기에 기차를 기다리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문득 아일랜드 오기 전 근무했던 지점이 서울대공원 근처여서, 동물원에 혼자서 자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동물원 둘레길이다.
혼자 동물원에 가면 사연 있어 보일까 봐 못 갔다.
마침 겨울이 오기 전 지금이야말로 바로 동물원 가기가가장 적기임을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그룹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으며 분위기를 차차 끌어올렸다.
비록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처럼 다음역에서 헤어진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자연은 어서 오라는 손짓으로 넌지시 이끌어주었다.
학생신분이 좋은 유일한 두 가지는 바로 대중교통 이용이 절반이고, 아이디카드를 이용하면 쏠쏠한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으로 동물원 예약을 하는데 학생할인을 받았음에도 서울대공원 성인 요금의
5배 넘는 금액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또, 아일랜드의 박물관이나 특정시설에선 표만 구입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에 내가 입장하는 시간도 지정해야 한다.
Dublin Zoo(더블린공원)은 Phoenix Park(피닉스공원은 평창에도 있지만, 더블린의 가장 큰 공원이다)에 있고, 워낙에 큰 공원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아침에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나오느라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동물원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정말 많았다.
더블린 동물원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표와 안내문이었다. 예를 들어 현재 이 동물이 야생에서 어느 상태로 존재하며, 멸종 상태와 위협이 되는 부분 그리고 이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중점적으로 케어하고 있는지를 쉽게 표로 정리한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배려도 인상적인데 단순히 동물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린이 배움 센터를 함께 운영하며 교육의 현장도 함께 구성한 부분이 돋보였다.
이날의 가장 큰 핵심은 동물들보다 할로윈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었다. 각각의 유령과 고스트로 분장하고 걷는 아이들의 예쁜 눈과 천친 난만함은 이날의 압도적 하이라이트였다.
아빠는 자녀를 목마 태우고 엄마는 유모차를 몰고 그 안에서 꼬물거리는 손으로 막대사탕과 풍선을 잡고 가는 가족의 뒤를 보고 있자니 세상 사는 법이 동서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호랑이와 코뿔소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빠와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웃는 엄마의 표정은 평화로운 어느 가정의 행복한 하루였다.
그 틈새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 또한 사연 있어 보이지 않으려 행동했다. 사실 내가 아일랜드에서 지내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들은 한국에 비해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옷을 입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과의 관계성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주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혼자 여행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밥을 먹기에 편하다. 특히 아무 Pub(펍)에나 들어가 맥주 마시는 건 너무 편하고 좋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항상 몇 년 뒤의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먹어서인가 봐. 그럼 그다음 나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거든. “
마흔 이전에는 혼자 하기가 낯설고 몇 년 뒤의 내 나이가 두려웠는데 마흔이 되고 나니 이제 조금씩 그 두려움이 바래지면서, 변하지 않는 진리와 고전으로 서서히물들어 가고 있음을 느껴본다.
기숙사로 돌아와서 혼자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와인한잔을 하니 공부는 거기서 끝이었다. 잠시 후 메일을 통해 받은 동물원의 설문조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설정하는 이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설령 시험을 망치더라도 오늘 다녀온 동물원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내일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다이어트만 내일부터가 아닌, 시험공부도내일부터이다.
아울러 2022년 서울의 이태원을 함께 기억하고 그 시간과 공간을 추모하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유가족 분들의 슬픔에 연대하고 조속히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