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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kalawinter Oct 30. 2023

사연 없이도 혼자서 동물원에 갑니다.

지금 아일랜드는 Halloween(할로윈) 발상지답게 곳곳마다 할로윈 장식이 가득하다. 할로윈은 Celtic(켈틱) 문화의 하나로서 여름이 끝나가는 것을 기념하는 Samhain(삼하인) 축제가 로마 가톨릭교회의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과 합해진 것이 기원의 정설이다.


집집마다 할로윈 장식에 지극 정성인 나라 아일랜드


그 기원의 장소가 아일랜드이고, 아일랜드 사람들이

Famine(대기근) 때 여러 나라로 이주하면서 전파되었다. 이미 내가 있는 Maynooth(메이누스)를 비롯한 각 대학교에선 목요일에 축제가 시작되었다. 금요일부터 할로윈 방학이 시작되었고, 각자 그 기간 동안 Reading Week(시험준비)의 시간을 갖는 것이다. 말이 방학이지 다음 주부터 시험이 시작되기에 10월의 마지막 날을 불태우고, 각자 시험준비를 시작한다.


물론 I am 현지인보다 영어가 부족하고, 진도 따라가기가 벅차기에 I am 이미 시험준비 모드이다.






일상의 평화로움이 타성에 젖게 되는 순간
그 평범함은 어느새 단조로움으로 변하고
새로운 리프레쉬를 갈망하게 된다.


그런데 가장 손쉽게 그 평범한 일상이 그리워지는 순간이 바로 시험준비기간이 아닐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시험만 앞두고 나면 그렇게 하고 싶어 지는 게 많아지고 쓸데없는 생각이 주마간산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남들보다 오랜 대학생활을 해서인지 시험이면 이제 정말 지긋지긋하지만, 시험은 나 자신을 겸손되게 만들고지루했던 일상을 다시 꿈꾸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맑은 하늘 새들의 노랫소리는 머릿속에 이해 안 되는 영어 문장을 쑤셔 넣으며, 인내심에 극한을 향해 달려가던 내게 방구석을 나가게 만들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다.


어디를 갈까 고민하지 않고 나왔기에 기차를 기다리며 검색하기 시작했다. 문득 아일랜드 오기 전 근무했던 지점이 서울대공원 근처여서, 동물원에 혼자서 자주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정확히는 동물원 둘레길이다.

혼자 동물원에 가면 사연 있어 보일까 봐 못 갔다.







마침 겨울이 오기 전 지금이야말로 바로 동물원 가기가가장 적기임을 스스로 합리화시켰다. 그룹 ‘동물원’의

‘혜화동’을 들으며 분위기를 차차 끌어올렸다.

비록 ‘시청 앞 지하철 역에서’처럼  다음역에서 헤어진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제로였지만,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는 자연은 어서 오라는 손짓으로 넌지시 이끌어주었다.


학생신분이 좋은 유일한 두 가지는 바로 대중교통 이용이 절반이고, 아이디카드를 이용하면 쏠쏠한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온라인으로 동물원 예약을 하는데 학생할인을 받았음에도 서울대공원 성인 요금의

5배 넘는 금액을 보고 살짝 당황했다. 또, 아일랜드의 박물관이나 특정시설에선 표만 구입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에 내가 입장하는 시간도 지정해야 한다.


Dublin Zoo(더블린공원)은 Phoenix Park(피닉스공원은 평창에도 있지만, 더블린의 가장 큰 공원이다)에 있고, 워낙에 큰 공원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아침에 장을 보고 청소를 하고 나오느라 늦은 시간에 도착했지만, 동물원엔 가족 단위의 관람객들이 정말 많았다.


더블린 동물원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표와 안내문이었다. 예를 들어 현재 이 동물이 야생에서 어느 상태로 존재하며, 멸종 상태와 위협이 되는 부분 그리고 이 동물들을 어떻게 관리하고 중점적으로 케어하고 있는지를 쉽게 표로 정리한 부분이 참 마음에 들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한 배려도 인상적인데 단순히 동물을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어린이 배움 센터를 함께 운영하며 교육의 현장도 함께 구성한 부분이 돋보였다.







이날의 가장 큰 핵심은 동물들보다 할로윈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었다. 각각의 유령과 고스트로 분장하고 걷는 아이들의 예쁜 눈과 천친 난만함은 이날의 압도적 하이라이트였다.


아빠는 자녀를 목마 태우고 엄마는 유모차를 몰고 그 안에서 꼬물거리는 손으로 막대사탕과 풍선을 잡고 가는 가족의 뒤를 보고 있자니 세상 사는 법이 동서를 막론하고 크게 다르지가 않았다.

호랑이와 코뿔소를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는 곳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아빠와 울음소리를 흉내 내고 웃는 엄마의 표정은 평화로운 어느 가정의 행복한 하루였다.



그 틈새를 방해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나 또한 사연 있어 보이지 않으려 행동했다. 사실 내가 아일랜드에서 지내며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이들은 한국에 비해 타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무슨 옷을 입든지, 무엇을 하든지 간에 자신과의 관계성이 없다면 그걸로 끝이다. 그래서 주위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혼자 여행하고, 공연을 관람하고 밥을 먹기에 편하다. 특히 아무 Pub(펍)에나 들어가 맥주 마시는 건 너무 편하고 좋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춘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항상 몇 년 뒤의 내 나이를 생각해 보면 끔찍했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됐을 때 담담할 수 있는 건 나이를 한 살씩먹어서인가 봐. 그럼 그다음 나이가 그리 낯설지만은 않거든. “


마흔 이전에는 혼자 하기가 낯설고 몇 년 뒤의 내 나이가 두려웠는데 마흔이 되고 나니 이제 조금씩 그 두려움이 바래지면서, 변하지 않는 진리와 고전으로 서서히물들어 가고 있음을 느껴본다.



기숙사로 돌아와서 혼자 떡볶이를 만들어 먹으며, 와인한잔을 하니 공부는 거기서 끝이었다. 잠시 후 메일을 통해 받은 동물원의 설문조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설정하는 이들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이 날 할로윈 분장을 한 어린이들은 입장이 무료였다. 그래서 다들 그렇게 열심히 꾸미고 온 것이었다.






설령 시험을 망치더라도 오늘 다녀온 동물원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며, 내일 더 열심히 하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다이어트만 내일부터가 아닌, 시험공부도내일부터이다.


아울러 2022년 서울의 이태원을 함께 기억하고 그 시간과 공간을 추모하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아울러 유가족 분들의 슬픔에 연대하고 조속히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길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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