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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별하 Jul 21. 2021

바디프로필 촬영 후기

126일간의 생존기

[계기]

내가 바디프로필을 찍기로 결심한건 올해 6월 말쯤이었다. 그 당시의 나는 지쳐있었고 삶에 대한 의지는 없었으며 밤에 자려고 누우면 내일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하는 이유가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고, 내 존재 의미에 대한 엄청난 회의감에 빠져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는게 주위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단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특히나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내게 주어진 일들 중에 내가 잘 해낼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던 중에 내 인생에 마지막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 나에게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운동만큼은 다른 외부적인 요인에 상관없이 오로지 내가 하는 만큼 정직하게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내 몸 하나 움직여서 하기만 하면 되는건데, 이것 마저 해내지 못한다면 더이상 삶을 지속하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체지방률 17%라는 목표를 잡고 최종적으로 바디프로필 촬영까지를 결심하고 2018년 6월 30일, 나의 생존기가 시작되었다.

[과정]

우선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해 맨몸운동부터 시작했다. 스쿼트 플랭크 푸쉬업 등으로 시작해서 점차 갯수와 종류를 늘려갔으며 중간중간 운동 루틴을 바꿔가며 전신이 골고루 운동 되도록 했다. 틈틈히 인바디를 측정해서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확인 했으며, 하루에 두세시간 정도를 운동에 투자했다.

맨몸 운동을 시작한지 40일이 지나고 나니 체지방률이 20.9%까지 내려왔다. 그 때부터는 맨몸으로는 갯수를 너무 많이 해야해서 시간이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좀 더 효율적인 운동을 위해 헬스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헬스장을 다닌 이후로는 상하체 2분할 체제로 중량을 늘려가며 다양한 운동을 했다. 기구를 사용하고 내 체중만이 아닌 추가적인 무게를 사용하는 것이 확실히 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맨몸운동과 달리 기구를 사용하면 타겟 근육만 집중해서 자극하는데 도움을 주고 추가하는 무게는 그 자극을 크게 해준다.

[변화]

일단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니 생활에 활력이 돋기 시작했다. 오늘 30개를 했으면 내일은 31개를 하더라도 점점 나아지는 내 자신이 스스로 뿌듯했고, 살도 점점 빠지기 시작하면서 몸의 변화들이 가시적으로 다가오니 더욱 신이났다. 내일 일어날 이유가 생겼으며, 하루하루의 목표도 생겼다. 가끔 운동을 쉬는 날도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나가는 내 자신이 기특해지기 시작했다. 하루하루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데 앞으로 내게 남은 인생은 얼마나 더 달라질 수 있을까, 기대가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그렇게 나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자전거를 타고 울산역까지 갔다 온 날에는 정말 운동으로 느낄 수 있는 상쾌함의 최대치를 느꼈고 그 때 처음 안 죽고 살아있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운동하는 대로 몸도 변하고 힘도 더 좋아지니 점점 '하면 되는구나! 마음만 먹으면 나도 할 수 있구나!' 자신감을 회복했다. 더이상 내가 쓸모없는 인간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 생각 하나를 얻기 위해 얼마나 먼길을 돌아왔는지. 나 자신은 존재자체로 유일무이하며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 까지 얼마나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는지. 참고 버티고 노력하고 애쓰고, 넘어지고 다치고 부서지고 깨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걸 딛고 다시 일어서기까지 정말 고생한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미안하고 또 고맙다.

[촬영]

의상 세벌에 신발, 소품 등을 담은 캐리어를 끌고 버스를 탔다. 난생 처음 샵에 가서 메이크업을 받았는데,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주셨다. 화장이 마음에 들어서 셀카 열심히 찍고 기분 좋은 상태로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대략 내가 생각해 온 컨셉을 말씀드리고 10분정도 펌핑을 했다. 옷을 갈아입고 촬영을 시작했는데, 역시 내가 걱정했던 대로 카메라 앞에선 나는 목각인형이었다. 그럴줄 알고 부른 고등학교 친구가 약간 늦게 도착을 해서 한껏 얼어있다가 친구가 오고나서는 긴장이 풀려 그 뒤로 순탄하게 촬영이 진행되었다.

사전에 카톡을 하면서 포즈는 따로 생각해가는게 좋을까 물어봤었다. 촬영하면서 디렉팅을 해줄테니 걱정말고 오시라길래 딱히 염두에 둔 포즈가 없는 상태로 갔는데 작가님이 디렉팅을 정말 너무 잘해주셨다. 신체 부위 하나하나 어딜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해주시고 내가 잘 못알아 들으면 직접 보여주시기도 하셨다. 많이 찍어봤다는 느낌이 엄청 들었고 어떤 포즈를 취해야 몸에 라인이 잘나오는지 이미 다 알고 있어서 작가님이 시키는대로만 믿고 따라갔다. 준비해온 소품도 나름 적절하게 잘 썼고 내가 펌핑하는 동안 내 의상에 맞춰서 준비해주신 배경이 진짜 의상이랑 찰떡이였다. 친구가 미리 연락해서 준비해 달라고 한거냐고 물어볼 정도로.

원래 옷 한벌당 30분가량 촬영을 하는데, 나랑 촬영하는게 재미있으셨는지 시간 가는줄 모르고 3시간동안 찍었다. 염분 당분 안먹고 수분컷팅까지 하느라 정신줄을 반쯤 놓은 상태의 내 아무말 대잔치가 작가님 개그코드랑 잘 맞은것 같았다. 칼 같이 시간 됐다고 다음의상으로 넘어가거나 그러지 않고 최대한 잘 찍어주려고 노력하시는게 느껴져서 좋았다.

[기록]

2018년 6월 30일 부터 2018년 11월 2일까지 총 126일 동안 운동을 했고 11월 3일에 촬영을 했다. 원래는 내 생일에 맞춰 10월 10일에 촬영을 하고 싶었으나 너무 극도의 시험기간이라 11월 3일로 날짜를 잡았다. 126일 동안 내가 한 크런치만 8255번이고, 레그레이즈만 6235번이다. 플랭크는 10525초, 즉 175분을 했다. 42일차 부터 헬스를 시작했고 84일 동안 내가 들어올리거나 밀어내거나 당긴 무게만 총 189414kg이다.

결국 목표했던 체지방률 17%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나는 더이상 이런걸로 나 자신을 구박하지 않는다. 노력했고 충분히 애썼다는걸 내가 알고 있으니 괜찮다. 중요한건 체지방률이 12%, 14% 이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는게 아니라, 운동을 하기 전의 23.1%의 나와 20.5%인 지금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나에게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조금 모자란들 어떠하며 조금 부족한들 어떠하리. 평생을 함께 갈 내 자신인데, 좀 더 다독여주고 지켜봐주고 응원해주기에도 모자란 인생이다.

[소감]

결국 이렇게 나의 생존기는 항상 몸 어딘가에 근육통을 달고 살다가 체지방률20.5%, 몸무게 55.6kg로 막을 내린다. 앞으로 운동은 계속 할거지만 솔직히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운동하면서 어깨고립이 잘 안되서 승모근이 날로 성장세를 타더니 직각 어깨 대신 삼각형 어깨를 만들어 주질 않나, 복근은 보일 기미가 있는듯 마는듯 미묘한 타이밍에 촬영을 하게 되었다. 자세에 따라 복근이 보였다 안보였다 하는 것도 그 때문. 근육 라인이 선명하게 보일만큼 체지방이 감량되지도 않았고 남들이 보기에 썩 대단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했고 충분히 애썼다는걸 내가 알고 있으니 괜찮다. 나라도 나를 좀 알아주자. 고생했다 토닥여주고 수고했다 쓰다듬어 주자.

너무 운동 위주로만 적은 것 같은데 사실 몸을 만드는데 있어서는 식단이 훨씬 중요하다. 이 부분은 후에 다른 게시글로 다시 올리기로 하고, 끝으로 내가 운동하면서 마음에 새겼던 구절을 소개하고자 한다. 마일리 사이러스 복근 운동중에 10분짜리 루틴은 5분짜리 루틴을 두번 반복하는 형식으로 되어있는데, 처음 5분이 끝나갈 무렵 이런말이 나온다.

"If you made it 5 minutes, you can do 10 minutes." 5분을 해냈다면, 당연히 한 번 더 해서 10분도 해낼 수 있다. 오늘 30개를 했으면 내일도 30개는 해낼 수 있다. 우리 몸은 쓰는대로 발달하게 되어있다. 언젠가는 30개가 전처럼 힘들지 않은 순간이 온다. 자기 자신을 이긴다는건 그런 것이다.

내가 해냈으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해낼 수 있다. 상대는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이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결과는 반드시 행동을 통해야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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