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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별하 Aug 14. 2021

[그날 죽을걸 그랬나?] #6.[가난] 학원비 연체

                                                                                                                       



사춘기 때는 한참 예민한 시기라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이 원망스러워진 사건도 있었다. 때는 내가 학원을 다니던 중학교 2~3학년쯤. 없는 형편에도 학원을 가고 싶다는 내 말에 동네에 작은 종합학원 하나를 다니게 되었다.




어느 날 학원 담임 선생님이 새로 오신 선생님으로 바뀌게 되었고 선생님이 정산을 해야겠다 싶었는지 원래 주지 않던 학원비 봉투를 나눠준 적이 있었다. 그동안 받아보지 못했던 학원비 봉투 겉면에는 각자의 이름과 밀린 학원비가 몇 달 치인지가 적혀있었다.




철없던 남자애 하나가 자기 봉투를 받아들더니 "와, 나 학원비 3개월치 밀렸어. 대박."이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나머지 애들도 나는 2개월, 나는 안 밀렸는데 하며 각자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5개월을 밀린 친구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난 5개월이네..."를 중얼거렸고 당시 14개월이 밀려있던 나는 호기심에 내 봉투를 뺏으려는 애들로부터 악착같이 봉투를 지켜내느라 눈에 쌍심지를 켜고 절대 보여주지 않겠다고 거의 울기 직전으로 화를 냈고 선생님이 빨리 집에 가자며 애들을 보냈다.




나는 학원을 다니는 동안 대충 학원비가 밀려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자그마치 14개월이나 밀려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전의 담임선생님께서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하기도 했고 학원 직원분들이나 선생님들의 태도에서도 전혀 느낄 수 없었었다.




아마 당시 내가 느낀 첫 감정은 창피함이었을 거다. 학원 친구들 앞에서 혹시나 14개월이 공개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 5분의 종례시간. 두 번째는 분노였다. 이 지경이 되도록 도대체 부모님은 뭘 했는가. 세 번째는 허탈함이었다. 나름대로 1년 넘게 학원을 다니면서 그래도 전보다는 우리 집 사정이 나아진 줄 알았는데 나만 몰랐던 것뿐이고 사정은 그대로였다. 아니 더 나빠졌을 수도 있겠지. 네 번째는 측은함이었다. 이걸 나한테 말도 못 하고 자기들끼리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을 부모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다. 차라리 나보고 학원 그만 다니면 안 되겠냐고 물어라도 보지. 내가 오빠랑 같이 논다고 학원 하루 땡땡이쳤을 때 화라도 내지. 학원 갔다가 집에 왔을 때 그렇게 환하게 웃으면서 맞이해주지나 말지.




그날 집에 가는 길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우느라 30분이 넘게 걸려서 겨우 집 앞 골목에 도착했다. 집 앞 골목에서 울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얼굴도 정리를 하고 봉투도 우선 숨긴 채로 집에 들어갔다. 아직도 기억난다 집에 온 나를 반기던 그날 엄마의 목소리가.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엄마 된장찌개 끓였나. 냄새 좋네~" 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평소랑 똑같이 밥을 먹었다. 봉투는 밥을 다 먹고 나서 TV를 보는 엄마 아빠 몰래 안방 머리맡에 놓아두었고 그날 나는 내 방에서 한참을 울다가 지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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