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죽을걸 그랬나?] #18. 중3 입시전쟁

by 정별하

공부는 잘했지만 그것 말고는 부모님의 이렇다 할 지원도 없었고 주변에 참고할만한 사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집안에서도 돌연변이 소리를 들으면서 혼자만 공부를 잘했던 나는 원래 자연히 내가 다니던 여자중학교 바로 옆에 위치한 여자고등학교로의 진학이 예정되어 있었다. 어차피 특목고를 갈 것이 아니었으니 그냥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면 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막상 중3이 되고 입시 시즌이 다가오면서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나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3,4명 정도 보러 가는 영재교육원 선발시험을 보러 가기도 하고 내신 상위 1.21%로 전교 3등으로 졸업을 할 정도의 성적이었기 때문에 막상 중3이 되자 특목고나 과학고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잘 나오면 부모님이 좋아하고 선생님들도 좋아해 주니까 내 나름대로 재미도 있고 해서 열심히 했던 것뿐인데, 막상 나랑 비슷한 성적의 친구들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미리 스펙을 쌓아서 고등학교 입시를 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특목고나 과학고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부모님은 그런 쪽에 있어서는 너무 무지했다.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문과 이과 중에서 이과 성향이었기 때문에 부랴부랴 과학고를 알아보기 시작하면서 원래 다니던 동네 학원에서도 과학고 대비반으로 반을 옮겼다. 근데 막상 이때도 반을 옮기고 나니 일단 학원비가 비싸져서(#6. [가난] 학원비 연체 에피소드 참고) 눈치가 보였고, 거기 있는 친구들은 이미 예전부터 과학고 입시를 준비중인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내용이 선행이 전혀 되어있지 않던 나로서는 갑자기 고등학교 내용들을 따라가기에 조금 어렵다고 느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따라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때 처음 선행학습의 벽을 느꼈던 것 같다. 그러면서 혼자 입시전형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그것보다 항상 연관검색어로 뜨는 것이 학비였다. 거의 모든 특목고나 과학고가 기숙사 생활이 기본이었기에 1년 학비와 기숙사비, 생활비 등의 대략적인 숫자를 보고 나는 아마 마음속에서 미리 포기를 했던 것 같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친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에서 전교 4등을 했을 때부터 그때까지 아마도 이미 막연히 이런 걸 알고 있어서 나는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던 게 아닐까?


부모님한테는 과학고가 가고 싶다는 소리도 안 했다. 학원도 그냥 뭐 배우는지 궁금해서 반을 옮기고 싶다고 했었다. 물론 부모님은 다 알았을 거다. 그리고 나도 다 알았다. 부모님이 보내주실 형편이 안된다는 걸. 자연스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고 나는 맘을 접었다.


경제적인 이유가 80% 이상이었지만 중1 때부터 준비한 친구들과는 다르게 입시가 2-3달 정도 남은 시점에서 이제 와서 내가 갑자기 준비한다고 해서 가능한가? 싶은 마음도 어느 정도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 알고 보니 딱 나때부터 입시전형이 바뀌면서 기존의 스펙위주에서 내신성적을 훨씬 많이 보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오히려 내가 마음먹고 준비했으면 나한테 더 유리했을 텐데 나는 지레 겁먹고 현실 앞에 타협해서 아예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나랑 비슷한 성적에 오래전부터 과학고를 준비했던 친구들은 오히려 내신관리를 잘 못해서 떨어졌다.


결국 전교 1등은 김해외고를 가고, 전교 2등은 현대청운고를 가고, 전교 3등이었던 나는 졸업식날 단상에 올라가서 받은 장학금 10만 원을 들고 바로 옆 고등학교로 가게 되었다.


과학고 진학을 포기한 뒤로는 학원도 그만뒀다. 고등학생이 되면 학원비가 더 비싸지는 데다가, 상위권 친구들은 대부분 과외를 했지만 나는 학원도 못 다니는데 과외는 당연히 못하니까 자존심이었는지 뭔지 내가 부모님한테 더 이상 학원은 필요 없다고 했다. 아마 어렴풋이 내가 원하는 수준의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미리 내 기대를 내가 차단했던 것 같다.


image.jpg


화, 금 연재
이전 20화[그날 죽을걸 그랬나?] #17. 대학도서관 밤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