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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Oct 13. 2023

투당탕탕 엄마 생각나는 다듬이질 소리

친정엄마는 다듬이 질을 잘하셨다.

따닥 따닥 따닥 따닥

아마 때리고 싶게 미운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아들 하나 첫째로 낳고 줄줄이 옘병할 딸년들을 다섯이나 낳았으니 할머니 서러운 잔소리에, 동서들 아들 자랑에, 아버지의 무심함에 분명 더 투당탕탕 때리고 싶어졌을게다.

엄마가 다듬이질을 하기 시작하면 언니들은 아무도 다듬이질 소리에 솔깃해 하지 않았지만 나는 온몸의 세포가 활짝 열려 머리끝이 쭈뼛 서는 흥분을 느끼곤 항상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듬이질 소리에 심취하곤 했었다.

"가서 공부 안 해!"

"가서 숙제 안 해!"

다듬이 방망이가 허공으로 휘영청 뻗어 올라 나를 향할라치면 잽싸게 언니들 방으로 토껴서는

“언니야 엄마 또 화났어"

"야 너 때문이잖아" 하며 주먹으로 내 머리통 쥐어박기 일쑤였다.


결혼을 하고 시댁을 가니 시어머님도 다듬이 질을 잘하셨다. 시어머님의 다듬이질에는 어떤 한이 서려 있었을까. 감히 그 무게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새댁시절이었다.

"야야 니도 해볼래"

시어머님은 마주앉아 구경하는 나를 야단치기는 커녕 다듬이 방망이를 선뜻 내어 주셨다.

따닥 따닥 따닥 따닥

"아고 재밌어라"

"어머니 저 잘하죠"

"야야 니 어데서 배웠노 잘하네"

시어머님과 나는 같이 따닥 따닥 따닥 따닥 신나게 때려댔다. 좁은 시골 동네에 다듬이질 소리가 퍼져나가면 열어놓은 대문으로 이웃 아줌씨가 쓱 들어와서는

"행님 머 하는교?"

"며누리 하고 다듬이질한다 와 어여 들온나"

하시며 은근슬쩍 며느리 자랑도 하셨다.

접혔던 하얀 광목천이 하나씩 펼쳐지면 어머님은 입에 물 한 모금 물고 촤~악 자로 잰 듯이 부챗살처럼 퍼져나가는 물방울의 포물선을 만들어 내셨는데 아주 일품이셨다.

그것만은 내가 절대 따라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친정집이 아파트로 가게 되면서부터 다듬이가 안 보였다.

시댁의 다듬이도 보이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동네에 고물 사러 오는 아저씨한테 이것저것 주시면서 다듬이도 같이 파셨다고 한다.

"지금 사람들은 아무도 쓰지 않는데 고걸 달라고 하더라. 그래서 옛다 가져가라 하고 고마 줏다"


지금은 그 정겨운 다듬이질 소리는 민속촌이나 가야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되었다. 옛날 친정집과 시댁의 다듬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옛것들이 더 귀한 대접을 받는 세상이 되었으니 값어치로 매길 수만 없는 추억의 물건들을 잘 챙겨놓지 못한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브런치북을 발간하게 되면서

'1월 어느하루' 와

'모두가 어버이날이라 시끌벅적하다' 가

재발행 되었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린 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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