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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Oct 07. 2023

선물같은 시간


요즈음 주말마다 딸과 함께 카페 산책을 한다.

각기 개성과 주인의 취향에 맞게 만들어져 있는 카페를 찾아다니는 것도 참 재미있다. 딸과는 맞는 게 별로 없는데 카페 취향은 비슷하다.


마당이 있고 한옥이 멋들어진 고즈넉한 카페는 시리도록 깨끗한 통창으로 정갈하고 아담한 마당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당 한쪽으로 단이되어 있고 휘장이 처져 있는 걸 보니 야외 결혼식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얘 여기 야외 결혼식 장소로 괜찮지 않아"

"응 그러네"

계산을 하면서 물어보니 야외결혼식 장소로 주말에 다섯 시간씩 대여해 준다고 한다.

"음 이건 괜찮은 정보다"  

은근히 딸아이가 결혼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며 혼자 시시덕거린다.


삐그덕 대는 2층 나무계단을 밟고 올라간 카페에선 좌식으로 등받이 된 의자에 앉아 바깥에 지나가는 이들 하나하나 몰래 지적질도 하고 이런저런 시시껄렁한 대화도 둘의 시간을 채우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먹기에도 아까울 정도로 예쁜 디저트와 새로운 차들의 맛을 보는 것 또한 내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구나 하는 만족감을 준다. 그러다 단풍 들어가는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걸 보고도 너무 이쁘다 탄성 지르는 딸을 보며 네가 더 이쁘다 생각했던 나였다. 말로는 다 표현 못하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엄마 자랄 때 얘기 좀 들려주라고 했을 땐 막상 기억나는 것도 없었고 해 줄 얘기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옛날 얘기들이 꼬인 실타래의 첫 줄을 찾은 것인 양 술술 풀려나온다.

엄마도 이런 삶을 살았구나 슬쩍 곁눈질로 아는 눈치이다. 딸이 공무원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전폭적인 지지를 못해줬다. 힘들게 들어가서 누구나 아깝다고 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는 게 이해가 안 되었다. 행복하지가 않다며 그림과 만화를 해보고 싶다는 딸에게 부모의 가치관을 무조건 들이댈 시대도 아니라는 걸 절실히 실감했다.


어릴 때 관심을 가지고 아이의 적성과 재능을 지켜보면서 일찌감치 예술적인 쪽으로 길을 열어주고 밀어줬다면 돌아 돌아 방황하며 어렵게 턱을 넘진 않았을 텐데 그저 공부만 잘하는 모범생이면 부모의 소임을 다 하는 줄로만 알았던 무지함에 요즘같이 후회가 많이 드는 적도 없다.


그렇게 딸은 전혀 다른 세상 속에서 이젠 글 쓰는 엄마와 함께 그림을 그리고 있다.

딸이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엄마일 뿐이다.

딸과 함께 이런 시간을 갖고 있는 것에 안도하는 반면 남들처럼 살지 않고 자기다움을 찾아 다른 삶으로 열심히 변화하고자 하는 딸의 세상을 걱정하며 또 많이 동경한다.


지금 엄마는 나이 들어 보이는 늙은이로 보이겠지만 너도 이렇게 살다 보면 내 나이가 될 거라는 걸 가르쳐 주고 싶다.

"엄마 오늘은 꽃차 마시러 갈까?"

"아니 그냥 쉬고 싶다"란 소리를 나는 잘한다.

언제까지 저렇게 물어봐 줄지도 모르는데 선물 같은 시간을 주려할 때 미루지 말자.

같이 따라나서자.

집순이인 내가 오늘 만이라도 아닌 척 끌려다니는 척 딸의 손에 이끌려 카페산책을 하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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