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기저기서 펼쳐지는 공연들의 광고로 시끌벅적하다.
길가에 붙어있는 플래카드를 보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에 환장했던 나의 고1 시절이 생각났다.
고1 음악선생님은 멋쟁이 성악가이셨다.
헤어스타일도 약간 긴 곱슬로 끝이 바람을 맞아 삐쳐 날아가는 모양이었고 넥타이 대신 스카프로 그 시절에 생각지도 못한 패션으로 여학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다 받았다.
물론 유부남이셨기에 망정이지 총각이었다면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음악 선생님이 출연하는 '라 트라비아타'를 그때 단체로 관람했는지 개인적으로 갔는지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덕분에 예술회관이란 데를 처음 가보았고, 빨간 벨벳의자가 무척이나 고급스러워 보여 아주 조심스럽게 앉았던 기억이 있다.
받아본 팸플릿에 선생님은 주연이 아닌 조연이셨고 우리에겐 주연이든 조연이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관객석에 불이 꺼지고 까만 휘장이 걷히며 드디어 막이 올랐다.
파리 상류층 사회의 밤 무도회에서 모차르트 같은 노란 꼬불꼬불 가발을 둘러쓰고 멋진 연회복을 입은 남자들과 가슴골이 훤히 다 보이는 화려한 드레스에 화장 짙은 여자들이 웅성웅성 대더니 '축배의 노래'가 챤하고 술잔을 들며 울려 퍼졌다.
'축배의 노래!'
나는 그때 잔을 높이 쳐들면서 부르던 '축배의 노래'에 그대로 꽂혔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내지르던 합창소리에 가슴이 쿵덩쿵덩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무도회에 참석한 주인공의 친구로 음악선생님이 나타나서 한 소절을 부르기 시작하자
아! 난리가 났다.
아악~ 비명소리에 넘어가는 고1 사춘기 소녀들의 함성때문에 안 그래도 주인공의 목소리에 비해서 약해 보이던 선생님의 성량이 티가 안 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소녀들은 마냥 좋았다.
우리 선생님이 최고였다.
선생님은 그 와중에도 우리 객석 쪽을 보시며 윙크를 날리셨다.
우리는 또 한 번 꺄아악~넘어갔다.
그것으로 그날의 오페라에 대한 기억은 더 이상 없었다.
그 뒤 음악시간에 선생님은 '축배의 노래'를 가르쳐주셨고 '라 트라비아타'는 그 당시 파리 상류사회의 놀자판 파티로 그들의 위선을 비꼬았다는 작품이라는 것과 축배의 노래가 젊은이의 쾌락을 주제로 담고 있어 많은 비판을 일으켰던 작품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보니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아주 유명한 오페라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춘희'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원작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축배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기분 좋게 흥얼거리며 그날 그 추억을 끌어온다.
그 시절에 수업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페라라는 색다른 음악세계를 접하게 해 주시고 사춘기 소녀들의 감성을 무한대로 키워주신 음악선생님을 나는 아직도 존경한다.
영어 선생님은
Try to remember
Don't cry for me argentina
라는 팝송으로 영어와 더 친해지기 위한 낭만적인 시간들도 만들어 주셨고 덕분에 나는 아직도 올드한 팝송에 더 끌리며 그때 배운 노래들은 지금 잊히지도 않는다.
특히 don't cry~는 사생아로 태어나 무명 가수와 배우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되었다가 남편이 죽은 후 정세에 밀려 쫒겨나온 에바 페론의 짧은 일생을 에비타라는 오페라로 만들어 주제곡이 되며 유명해졌다는 내용을 듣고 모두 함께 숨죽이며 열정적으로 배웠던 것이기도 하다.
체벌이 무한대로 난무하고 출석부로 머리통 철퍼덕 두드려 맞아도 끽소리 한번 못 내던 시절이었지만 제자를 진정으로 아끼며 가르침에 열정이셨던 몇몇 선생님에 대한 연정은 그 시절 보석과도 같은 두근거리는 시간들을 만들어주었다.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들이 함께 따라오며 어느날 문득 떠올라 눈물 젖게 하고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는 것은 추억이 담긴 노래가 될 것이다.
크리스마스라고 떠들썩, 연말이라고 떠들썩하다. 아마도 지금은 노년의 삶을 살고 계실 그때의 낭만을 가르쳐 주셨던 영어선생님과 음악선생님의 평안한 삶을 조용한 이곳에서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