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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Jan 13. 2024

가족

몇 달 전에 조카가 둘째 아이를 낳았다.

요즘 같은 저출산 시대에 아기를 둘이나 낳았으니 신통하고 이쁜 짓만 골라서 한다고 입에 칭찬들이 마르지 않는다.

애국자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업고 다녀도 모자랄 정도로 기특하다.


조카는 아이를 잠시 맡겨놓고 홀로 마트에 다니러 갔다 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단다.

횡단보도 신호에 걸려 초록등을 기다리는 그 시간도 제발 좀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하니 육아 스트레스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친정언니는 매일 출퇴근해서 손주 봐주느라 힘들다며 행복한 비명을 질러대고 조카는 조카대로 잠깐 혼자만의 시간으로 행복하다 하니  내 뜻과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일상이 때론 지친 법이긴 하다.

아직 손주가 없는 나는 언니와 조카의 복작복작한 지친 일상이 마냥 부럽기만 하고  누군가의 힘듦이 또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라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우리 세대는 자식들이 있어서 부부가 행복하고 비로소 가족이라는 완연체가 되었음에 만족하게 생각했다.

부모를 모실 수도 있었고 그런 자식으로서의 내 존재에 가치를 부여시키기도 했다.

그런데 부모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에게 부양받지 못하는 첫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지면서 자식이라는 의미가 가족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떠밀려 가치를 따져가는 순위로 매겨진다니 씁쓰레하기 그지없다.


지금도 혼밥이라든지 딩크족이라든지 눈뜨고 일어나면 새로운 말들이 족족 생겨나고 변화하고 있다.

쿨~한 모습으로 지금 세상을 따라가 보려고 노력하지만 내 뒤통수는 언제나 어린 시절 형제들끼리 서로 싸워가며 배려하며 살았던 돌보아줄 가족들이 있던 따뜻한 시간으로 끌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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