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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Feb 17. 2024

누룽숭늉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눈뜨자마자 이불에서 기어 나오기가 싫어지는 날이 있다.

이럴 땐 구시렁구시렁 날씨 탓으로 돌리며 더 뭉기적거리다가  기지개를 쭈욱 한번 켜서 혈액순환을 높이고  꾸역꾸역 일어나선 미지근한 물로 입안을  헹구어내고 따뜻한 물 한잔으로 온몸을 깨운다.

주방 설거지통엔 간밤에 끓여놓은 미역국으로 밥 말아먹은 남편의 아침밥그릇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어젯밤에 분명 내가 먹고 싶어서 끓여놓았던 미역국인데 이 아침에 왠지 당기지가 않는다.

뚝배기를 찾아서 빡빡 씻는다.

한동안 쓰지 않았던 티를 팍팍 내며 허여무리하게 찌든 때가 가득 묻어있다.

반들반들 윤이 나게 깨끗해진 뚝배기에 밥 한 그릇을 부어 넣고 숟가락으로 고르게 펴서 물 한 숟가락으로 접착을 시킨다.

제일 낮은 불로 은근하게 밥을 태운다.

숟가락으로 살살 펴가며 뽀지직 뽀지직 밥이 뚝배기에 눌어붙는  소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체크하며 계속 서서 지켜보다가 탄내가 날락 말락 할 시점에 물 한 그릇을 부었더니 촤~ 악 하얀 김이 퍼져나가며 뚝배기바닥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한다.

이제 그대로 끓이면 된다.

오늘 아침 갑자기 누룽숭늉이 먹고 싶었다.

배가 아프고 체기가 있을 때 엄마가 해주던 누룽숭늉이다.  

누룽지를 다시 끓여 먹는 것이 누룽숭늉인데 만들어진 누룽지를 끓여서 먹는 맛과 밥을 뚝배기에 눌여서  끓여 먹는 맛은 또 다르다.

누룽지맛이 아닌 아주 고소하면서 진하고 부드러운 밥맛이  난다. 

그 맛은 이렇게 추운 날 쟁여진 나이만큼 소리소문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곱창김을 가스불에 설렁설렁 구워 찢어놓고 국간장과  무짠지를 썰어서 뚝배기채로 후후  불어가며 한 숟갈을 뜬다.

어휴 고소하다.

바로 이맛이다.

아침 입맛이 확 살아난다.

정말 아무것도 필요 없이 누륭숭늉과 무짠지가 추운 아침 허기진배를 꽉꽉 채워준다.

거기다 새카만 국간장에 콕 찍어 먹는 곱창김의 불맛까지...

지나가던 남편이 흘깃 쳐다보며 꼭 옛날 할매들 밥 먹는 것 같이 먹는다며 한소리하고 지나간다.

남편은 시골태생이고 나는 도시녀이지만 이럴때 입맛만큼은 두사람이 완전 뒤바뀐것 같다.

형편없어 보인들 어떠랴.

모든 걸 다 덮어주고 싶을 만큼  온갖 정성이 들어간 엄마 생각나게 하는 눈물같이 달고 짠맛이다.




대문 그림은 은수 작가님이 올리신 대문 사진을 보고 제가 그린 그림입니다

물론 은수 작가님의 동의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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