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터지기 전 해에 아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스몰웨딩으로 결혼을 했다.
누구나 똑같이 하는 결혼식은 싫고 간소하고 특별하게 하고 싶다고 하길래 쿨하게 그러라고 해주고는 사실 속으로는 은근 걱정이 되었다.
초라해진 결혼식이 되면 어떡하지, 특별하게 하려다가 맥 빠진 결혼식이 되면 어떡하지 등등. 상견례에서 폐백, 예단은 일절 안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예물도 두 사람이 알아서 반지 하나 맞추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결혼식 날 주례사도 없었지만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예식으로 누구나 다들 웃음을 머금는 날이 되었다.
예식을 진행한 자리에서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 따뜻함을 품은 비후까스는 모두들 맛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신랑 신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을 다 알고 계시는 아주 가까운 분들만 모셨던 지라 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는 오신 손님들과 눈 맞추며 인사하고 같이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고, 옛날 아기였을 때 시절 얘기까지 오고 가며 화기애애한 예식으로 잘 끝이 났다.
우리의 걱정과는 반대로 아이들의 결정에 따라준 것이 참 잘한 일이었다.
허례허식이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예단 문제로 시시비비하는 문제들이 가끔 거론될 때마다 35년 전 내가 결혼할 때가 떠오른다.
그 시절엔 예단, 폐백, 혼수 모든 것들이 시댁 위주로 당연하게 생각되던 시절이었지만 나는 예단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댁의 예단 발목 잡기가 없었고 여기에는 남편의 강력한 입김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시어머니의 다정함은 항상 철철 넘쳐흘렀으며 지금 삼동서는 서로 믿고 의지하는 끈끈한 관계가 되어 있다.
요즘엔 다른 사람의 눈치보기, 또는 내가 누군데 등의 자랑의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결혼식의 허례허식이 진솔하고 정겨운 모습으로 바뀔 시대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