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바깥 출입이 뜸해서 사람 만날 일이 적어지자 남편은 이발소에 가지 않고 집에서 머리를 자르고 싶어했다.
뇌출혈 이후 약간의 머리 모양에 움푹 파인 곳이 있어 남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부분이 이해가 되어서 나는 얼떨결에 남편의 전용 이발사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눈썰미가 좀 있는 편이고 손재주도 있는 편이라 그것만 믿고 무식이 용감하다고 오케이했다.
미용실에서 남성커트하는 것도 눈여겨 쳐다보며 원장님께 헤어커트 가운과 스펀지를 주문해 달라 했더니 동네 미용실 다 굶어 죽겠다며 샐쭉 눈을 흘긴다. 헤어가운은 주문해 주겠지만 스펀지와 커트 빗은 집 미용실 오픈 기념 선물로 준다며 공짜로 안겨 준다.
뭐 그 정도는 오고 갈 수 있는 사이라 기분 좋게 받아 들어 웃고 나오며 다음에 들러 집에서 만든 국화차와 페퍼민트차를 선물하고 왔다.
사람 냄새가 오고 가는 찐한 인심이다.
첫 이발 후 남편은 애써 괜찮은 표정을 짓긴 했지만 아무리 손재주가 있다 해도 가위질은 초보자의 한계가 있는 지라 내 마음에도 들지 않았다.
M자형 머리스타일인 남편은 이미 정수리 부분이 대머리가 친구 하자고 달려들고 있는데 유난히 그 부분을 또 신경 써서 잘라달란다.
몇 오라기 없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신경 쓰라는 것인지 그냥 대충 자르고 어영부영 첫 가위질은 그렇게 넘어갔다.
‘아! 역시 기술자들은 그냥 돈을 받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지금은 전문 미용 가위를 사들이고 바리깡이라는 손기계도 사서는 제법 익숙한 손놀림으로 남편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그래도 삐죽빼죽 어색한 가위질 표시는 아직도 생기고 있지만 어쨌든 남편이 만족하니 나도 만족한다.
햇빛 좋은 날 마당에서 둘이 잘 잘랐니 못 잘랐니 티격태격하며 가위질하는 이런 모습.
좋든 싫든 내가 있어 당신이 있어 같이 늙어가는 이런 모습들로 노후의 한 페이지를 채워가는 하루.
다 감사한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