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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란 Jul 10. 2023

시어머님의 “야야”



“야야 아비는 출근했나?”

돌아가신 시어머니는 나를 항상 야야라고 부르셨다.

“야야 와서 고춧가루하고 상추 좀 뜯어가라”

하시면 나는 기차를 타고 시댁 동네 오며 가며 낯 익혔던 어른들께 인사하고 “새댁이 자주 오네” 반가워하시던 동네 어르신들…

지금은 빈집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아이들 기침이라도 오래 끌고 있다는 얘기를 들으시는 날은 배 속을 파내고 꿀과 검정콩을 넣어 은박지를 싸고, 그 위에 황토를 발라서 왕겨를 덮은 다음 은은한 불로 밤새 그 옆을 지키시며 달여서 주시던 분이었다.

박카스 병으로 한 병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는 그걸 먹고 며칠 병원 약으로도 낫지 않던 기침이 뚝 그치는 걸 보고 정말 신기했다.

“야야 배숙 먹고 아그는 좀 어떻노”

어리석은 며느리는 밤을 꼴딱 지새우며 왕겨를 태우시던 그 노고는 생각도 못하고 한 병 더 해달라고 말씀드렸으니

늙은 시어머니의 힘듦보다 분명 제 새끼만 먼저 챙겼던 거였다.


산골에 살게 되면서 제일 아쉬웠던 부분은 시어머니를 이 집에 단 하루도 모시지 못한 거였다.

분명 뒷짐 지고 마당을 어슬렁 돌아다니시다가 돌멩이 하나를 들어 제자리에 놓으시곤 맨손으로 흙을 쓸고 닦고 하시며 흐뭇해하셨을 텐데, 집을 짓게 된 건 이미 돌아가신 뒤였으니...

남편도 그 점을 많이 아쉬워한다.

자식은 늘 어려워 전전긍긍하시면서 며느리에게는 항상 편하게 다가워 주시던 분이셨다.

추억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벅차 흐르는 양이지만 가슴 속엔 허전함만 꽉 차있다.


시어머님의 기일이 다가온다.

작년부터 시아버님 제사와 합쳤고 또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큰 형님의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관계로 절에다 모시기로 했으니 또 아쉬워지긴 한다.

산소에 들러 잘 계시라 인사하고 와야겠다.

어머님이 “야야 왔나 “하고 반겨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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