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퇴사.no2

by 꾸꾸

여느 때와 같았던 평온했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 버스에 몸을 실은 나는 여전히 '퇴사'라는 중대한 결정을 머릿속에 가득 싣고 있었다.

여전히 뚜렷한 결정을 하지 못한 나는 '퇴사하고 뭐 할까?'라는 물음에 명확한 방향을 선택하지 못한 채
"아~ 이것도 해볼까? 저것도 해볼까?"라는 두루뭉술한 생각들만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하니 일찍부터 출근한 사람들이 각자의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사무실 한켠에 위치한 우리 팀 자리에도 몇몇 사람들이 들어와 업무를 보고 있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노트북을 꺼내 출근 체크를 마치고 오늘 할 일과 챙겨야 할 일들을 나열하였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 다가와 익숙한 목소리로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오늘 일찍 출근하셨네요?"
"아, 네 ㅎㅎㅎ... 저 사실 오늘 마지막 근무예요."

순간 나는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찰나의 시간에 내가 지금 고민 중이던 고민거리가 생각이 났고,
내 앞에 대면한 이 사람은 나와 같은 고민에서 해방된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 진짜요...? 갑자기...? 왜요?? 어디 가세요!?"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같은 고민에서 해방됐다는 사실과 함께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한 걱정거리들부터 반자동으로 바로 질문으로 나왔다.

"아... 저 남편 따라가요....!"

최근에 결혼한 A님은 8년 넘게 연애를 해왔고, 결혼식과 연애 사실도 그동안 회사 사람들에겐 철저하게 비밀로 하고 있었다.

"아... 이야기 들었어요.. 늦었지만 결혼 축하드려요. 결혼식 잘하시고, 신혼여행도 잘 다녀오셨죠..?
근데 바로 갑자기 퇴사라니... ㅠㅠ 이렇게 이별을 통보하는 게 어디 있어요..."

"아 네네, 남편이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그냥 저도 같이 따라서 미국 가서 살려구요~
한 달 전? 부터 다른 동료들한텐 말했는데 꾸꾸님 휴가라 말씀을 따로 못 드렸네요...!"

나도 최근에 결혼을 하고, 결혼 휴가와 회사 8주년 리프레시 휴가를 합쳐서 장기 휴가를 갔다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아... 그렇구나... 미국이라니... 아예 이민 가시는 거예요?"

"네네... 꾸꾸님 건강하시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아이고... 그래도 그동안 정들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이별 소식이라니... 슬프네요..."

짧은 인사가 마음 한켠에 공허한 구멍을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직장 동료와의 이별, 나와 같은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이 결정을 내린 상황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다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나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동시에 나는 회사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이 들었고,
어릴 때부터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결혼'과 같은 정해져 있는 루트대로 살아가는 내 자신과,
그런 직장 속에서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회사에서 8년이란 생활은
'퇴사'를 고민하면서도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안주'된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다. 나는 결국 벗어나려 고민하면서도 선택하지 못했던 이유는

이 회사를 나의 요람이라 생각하고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뒤숭숭한 마음으로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 버스에 몸을 싣고
늘 창밖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좋아하는 나는 2층 우측 창가에 앉아
스쳐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멍하니 하루를 되새겼다.

그러다 문득 신호등에 걸린 것인지 버스는 어딘지 모를 길모퉁이에 정차하였고,

그때 길가에 우뚝 솟아 있는 가로수 나무를 보게 되었다.

봄이라 푸릇푸릇하게 새로 돋아나 있는 힘찬 나뭇잎들이 점점 짙은 초록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 나뭇잎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나뭇잎도 한 가지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다하고, 색이 다해 삶이 다한 뒤에야 가지에서 떨어져 나와 새로운 세상을 보는구나..."

문득 든 생각은 나의 현재 상황과 인생에 반영되어
마치 회사생활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고, 나중에 인생이 다한 뒤에야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될 것 같았다.

인생은 한 번이며 지나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젠 정말 결정을 내려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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