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생 100명

대곡초등학교

by 꾸꾸

전교생 100명


물론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 통틀어서 합친 숫자이다.

영주산 중턱에 자리 잡은 대곡초등학교는 산 주위에 자리해 있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이 오기에 적합한 학교다. 나와 우리 누나도 포함 1 학녀부터 6학년까지의 전체 인원수는 100명.

평균적으로 각 학년마다 20명도 채 되지 않는 인원으로 구성되어 운영하는 시골 학교다.

그나마 무슨 일이었는지 우리 학년 학생들은 그간 대곡초등학교에 입학했던 아이들 중 가장 많은 인원수였다.


26명.


첫 수업 때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시며 너희들이 있어 미래가 밝고 든든하다며, 우리 학교도 드디어 전교생 100명이 넘었다고 기뻐하셨다.

2 학년 위인 우리 누나는 전교생 14명뿐이었고, 다른 학년도 많아봤자 3명 내지 5명 정도 더 많은 수준이었는데, 우리 학년이 들어오자 전체 인원수가 102명으로 100명이 넘은 적은 처음이라고 했다.


매일아침 학교 운동장에 모여 다 같이 아침 조례를 할 때 우리가 얼마나 숫자가 많은지 실감했다.

운동장에 줄을 설 때 왼쪽부터 차례대로 나이가 적은 학년순으로 남자, 여자 일열종대로 줄을 섰는데

유독 우리 1학년만 뒤쪽으로 줄이 몇 줄은 더 삐져나와 있었다.


'따라라라라단 , 따라라라라단, 딴 딴 딴 단, 따라라라다단 '

매일 아침 아침조례시간엔 교장선생님이 나와서 한 말씀하시고, 다 같이 국민체조를 하고 운동장 한 바퀴를 뛴다. 어릴 때는 왜?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하라니까 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교실에 책가방을 놔두고 선생님의 호령에 맞추어 운동장으로 나가 줄을 섰다.


"뒤로 번호!"

"하나"

"둘!"

"셋~"


처음엔 다들 군대식 번호 세기가 어색해서 어떻게 하는지 몰랐으나, 고개만 뒤로 젖히며 본인 차례 때 번호만 외치면 되는 단순한 일이라 금세 익숙해졌다.


"열하나!"


나는 키가 중간쯤이라 번호도 중간쯤이었고 앞에서부터 점점 다가오는 구령에 맞춰 틀리지 않기 위해 집중했다.


"스물여섯 끝!"


마지막으로 우리 반에서 키가 제일 큰 성진이의 구호를 끝으로 오늘 출석은 100% 완료했음을 구령으로 알렸다.

성진이는 또래 아이들보다 머리가 두 개 정도는 더 높았는데, 가까이에서 말을 하려면 고개를 높게 올려야지만 대화가 가능할 정도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성진이는 내가 학교를 올 때 항상 지나쳐오는 계단 던전 입구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 최고 높이를 자랑하는 내곡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구호를 모두 마치고, 학년별로 제일 앞에 담임선생님들이 자리 잡고 서있었는데 서로 눈과 손모양으로 '우린 문제없어!'라고 수신호를 한 뒤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4학년 선생님이 강단에 서있는 교장선생님에게 큰소리로 외쳤다.


"인원 이상 없습니다!"

이상이 없음을 들은 교장선생님은 차분하면서도 근엄하게 짧은 인사말을 시작으로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었는지 초등학교를 다니는 6년 내내 단 한 번도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제대로 들었던 적은 없었다.

아니, 하고 싶어도 못했다.

중간중간 멍 때리기도 하고, 어제 먹었던 저녁 생각, 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러 갈 생각, 여러 가지 잡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워 교장선생님의 말은 들어오지 않았다.

중간중간 정신을 차려 집중하는 척을 하곤 했는데 대부분 인생이야기뿐이었다.


"내가 어릴 때는..."

"나는 이럴 때 용기를 내서..."

"내가 여기 서있는 이유는..."

"너희는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지루한 이야기를 낮은 목소리로 천천~ 히 하니 집일을 할 리가 있나..

그리고 내가 교장선생님의 말을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털썩"


102명이 서있는 가운데 어디선가 무언가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미화 쓰러졌어요!!"


아무리 어린아이들이라고 해도 뙈양볕에 30분 넘게 세워놓으면 현기증이 날수밖에 없다.

2차 성장이 시작된 고학년 여자 학생들 중 빈혈기가 있는 학생은 그 30분을 견딜 수 없었다.

주로 5학년이나 6학년 여자 누나들 중에 아침 조례시간에 픽픽 쓰러졌는데

쓰러진 사람을 아무도 부축하거나, 대열을 이탈하진 않았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대열을 선 것처럼 견고하게 본인의 자리를 지켰다.

누군가 쓰러지면 그 학년 담임선생님이 쓰러진 학생에게 가서 부축해서 일으키며 양호실까지 데려다주었다.


"야! 거기 뒤에 줄 똑바로 안서!"


교장선생님 말씀 중에도 각 학년 담임선생님은 학생들의 대열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일열로 줄을 서있으면 누가 삐뚤게 섰는지, 누가 삐져나왔는지 다 보이기 때문이다.


"앞사람 뒤통수가 정면에 보이게 스란 말이야!!"

5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우리 누나한테 들었는데 우리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선생님이라고 했다.

교장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중에도 학생들의 줄을 똑바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5학년 담임선생님은 피부가 까무잡잡하고 눈매가 무서웠는데 젊을 때 운동선수를 하다가 체육 선생님이 되셨다고 했다.

학교 내에서도 항상 큰소리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시는데 손에는 늘 기다란 나무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아이들을 체벌했다.


다행히 우리 담임선생님은 중년의 단정한 여자 선생님이셨고, 언제나 포근하고 다정하게 말씀해 주셨다.


"똑바로 줄 서야지"


하지만 아침 조례시간에는 예외가 없었는데 5학년 선생님처럼 큰소리로 호통을 치시지는 않고 가까이 와서 어깨를 툭 치면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나는 매일 있는 이 조례시간이 너무 지루하고 심심해서 다리 한쪽에 힘을 줬다가 뺏다가, 앞사람 뒤통수에 비듬이 있나 없나 살피기도 하고, 뒤뚱뒤뚱 몸을 흔들며 앞에 사람이 몇 명까지 보이나 이런 할 일 없는 일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다가 내 몸짓이 좀 과해지면 선생님이 내 옆으로 와서 줄을 똑바로 서라고 말씀하셨다.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을 때 나는 원래 아침에 스던 자리에 스려다 아차 싶었다.

누군가 낯선 얼굴이 그 자리에 서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나 이제 2학년이구나..'


새로 들어온 신입생이 1학년이 되었고 나는 이제 2학년이 되었다.

늘 제일 왼쪽줄에 서있다가 한 칸 옆으로 옮겼는데 뭔가 커다란 권력을 얻은 것 같고, 뭐라도 되는 것처럼 어깨가 으쓱하고 올라갔다.

새로 들어온 신입 1학년은 우리보다 조금 더 적은 22명이었다. 그래도 평균보다 좀 더 높은 수준이라 전교생 수가 또 늘었다며 선생님이 좋아하셨다.

강단에는 늘 우리에게 인생 이야기를 해주시는 교장선생님과 옆에 한 분이 더 서계셨다.



"여러분 저는 그동안......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또 10여 분간 지속되는 연설에 잠깐 집중력을 잃고 기억하는 건 시작과 끝뿐이었다.

교장선생님이 나이가 많이 들어 은퇴하시고, 새로운 교장선생님이 오신다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생수처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남자 차생수입니다!! 허허허허허 "


새로 온 교장선생님은 키가 정말 크셨고 운동을 많이 하셨는지 중년의 나이에도 등치가 꽤나 좋으셨다.

무엇보다 부리부리한 눈과 당당한 행동들이 교장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차생수 교장선생님은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셨는데 항상 걸어서 출퇴근을 하셨고, 길 가다가 학생들을 보면 호탕하게 웃으면서 운동해야 건강해집니다~ 라며 한 말씀하셨다.


"여러분 모두 운동을 열심히 해야 저처럼 미남이 되고 근육이 불룩불룩 나옵니다~!"


교장선생님은 매일 아침 조례시간에 늘 빠뜨리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운동을 해야 본인처럼 잘생겨지고 몸도 좋아진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키득키득 웃었다. 덕분에 지루하고 따분했던 아침 조례시간은 교장선생님의 개그와 재치를 보는 즐거운 시간으로 변했다.


"야 우리 그럼 6년 동안 계속 같은 반이겠네?"


교실에 들어와 앉아 첫 시간인 슬기로운 생활 책을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옆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음.. 그렇지..? 전학만 가지 않는다면?"

"맞아 근데 너 전학 갈 거야?"

"아니?"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으니 학년이 지나도 계속 같은 반으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6년 동안 같은 반에서 지내는 거다.

벌써 1년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는데 앞으로 5년이나 더 같은 반 생활을 해야 된다는 생각보다는

5년 동안 이 학교에서 같은 복도, 같은 등교, 하교를 해야 된다는 게 까마득했다.

무엇보다 내가 있는 2학년 교실은 1층에 있었는데 1,2,3 학녀까지는 1층이었고 4,5,6 학년 교실은 2층에 있었다.

특히나 6학년 교실은 2층에서도 제일 구석에 위치해 있었는데 나는 4학년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그쪽 화장실을 써본 적도, 근처에 가본 적도 없었다. 그쪽은 무언가 범접할 수 없는 낯설고 무서운 공간이었는데,

내가 어느 세월에 커서 저기 교실을 써보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수가 적으니 청소나 당번같이 할 일도 많은 것은 불편한 일이지만 장점도 많았다.

특히나 상을 많이 받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새로 오신 차생수 교장선생님은 학교 내에서 직접 만든 여러 가지 상을 분기별로 자리를 만들어 상을 주셨는데,

학생 수가 적은 우리 학교는 거의 모든 학년이 상을 한 번씩 다 받는 거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조금만 노력하고 근면성실하면 한 번에 상을 3개, 4개씩 받는 것도 쉬웠다.


우리 반에는 언제나 상을 5개 이상씩 받는 친구가 있었는데 커다랗고 동그란 안경을 쓰고 볼에는 주근깨가 가득한 딱 봐도 범생이 스타일의 영은이었다. 영은이는 하루에도 학원을 2개씩 다녀서 학교가 끝나고 친구들과 같이 놀아본 적이 없었다. 나도 영은이는 학교에서만 보고 학교 밖에서는 따로 본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학교가 끝날 시간이 되면 항상 영은이 어머니가 차를 타고 학교 앞에서 영은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탓인지, 아니면 영은이가 정말 천재인지 영은이는 항상 전 과목 시험에서 100점을 맞았다.

제대로 된 시험은 아니었지만 담임선생님이 준비한 쪽지 시험 같은 것을 보면 나는 언제나 10개 중에 5개, 6개 정도 맞추는 수준이었는데 영은이는 무조건 10개를 다 맞췄다.

처음에는 신기하고 멋져 보였는데 언제나 100점을 맞는 것을 보고 쟤는 원래 천재니까..라는 생각으로 당연시하게 되면서 친구들 사이에서도 별명이 천재로 불리게 되었다.


그런 영은이에게도 오빠가 한 명 있었는데 우리 누나와 동갑이었다.

영서형은 영은이랑은 정 반대였다. 피부도 좋고 키가 엄청 컸다. 우리 반에서 제일 큰 성진이보다도 머리가 서너 개는 더 위로 붙어있었고, 교장선생님보다도 키가 더 컸다. 근데 정말 반대인 것은 공부였다.

누나 말로는 공부와는 거리가 좀 많이 멀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가 끝나고 저녁에 뒷가지 슈퍼 앞에 모여 노는 무리들 중 가장 높은 출석률을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영서형, 성현이 형, 정식이 형 이렇게 3명은 매일매일 뒷가지 슈퍼 앞에 모여서 노는 무리들이었는데 그중 영서형은 큰 키로 껑충껑충 뛰어다니며 노는 걸 제일 좋아했다.


오늘도 학교에 등교하자마자 책가방을 놓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먼저 나와있는 사람들, 느긋이 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제자리를 찾아 분주히 이동 중이다.

나도 내 자리를 찾아 운동장을 둘러보았다.

제일 왼쪽 구석에는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어슬렁어슬렁 거리고 있었고,

저~ 반대쪽 5학년, 6학년 쪽은 아예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종소리가 울리면 내려올 모양이다.

나는 선생님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빠르게 내 자리를 찾아갔다.

2학년 선생님은 조금 무서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더 조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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