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명절

by 꾸꾸

"그래서 다들 언제 온다고?"

"첫 찌는 언제 온다고?"

"둘째는 연락해 봤어?"

"당일에 오는 거 맞지??"


하루가 멀다 하고 명절에 가족들이 언제 오는지 계속해서 질문하시는 할아버지의 심기가 영 불편하신 것 같았다.

항상 가족들이 많이 북적이는 걸 좋아하시던 할아버지의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인 명절을 앞두고 자식들이 언제 오는지 궁금하셨기 때문인데 이번 명절에는 큰아버지 장사가 바쁘신지 못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길거리 포장마차로 시작해서 돈을 벌어 버젓한 식당하나를 차리셨고, 주기적으로 업종을 바꿔가며 장사를 해오셨다. 나는 큰아버지가 피자가게를 하실 때부터 기억한다. 왜냐면 아버지가 주말마다 종로에 있는 큰아버지의 가게에 데려가서 먹을 걸 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에 큰아버지 가게에 일손이 부족해서 일을 도와주러 가신 어머니를 데리러 가는 게 목적이었지만 나는 덤으로 따라가서 평소에 먹어보지 못했던 피자나 스파게티를 먹었다.

나는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차분하게 차에 앉아서 잘 따라다녔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먹기 위해서이다.

피자도 맛있긴 했는데 나는 이상하게 뜨거운 유리그릇과 함께 데워진 뜨끈뜨끈한 스파게티면에 토마토소스 위로 뿌려진 두꺼운 치즈가 주욱~ 늘어나 고소하고, 새콤하며 달달한 스파게티가 너무 맛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라~~ 저녁 먹었니? 뭐해줄까?"

"스파게티요!!!!"

주말에 종로까지 가는 길은 짧지 않은 거리었는데 스파게티를 위해서라면 그까짓 한 시간 넘는 시간은 가뿐히 견딜 수 있었다.

가게에서 일하던 형, 누나들도 나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내가 오면 더 먹고 싶은 건 없는지, 여자친구는 없는지, 학교생활은 어떤지, 이런 것들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그런 형, 누나들이 뭐라 하던 개의치 않고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스파게티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까? 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큰아버지의 가게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항상 내가 주말 저녁에 갈 때에도 늘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장사가 잘 되기 시작하고, 일손이 부족해지자 큰고모, 셋째 고모, 막내고모까지 큰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시게 되었다. 큰아버지는 돈관리와 운영을, 큰고모, 막내고모는 요리를, 셋째 고모는 서빙을 주로 하셨다.

그래서 만약 큰아버지가 장사 때문에 명절에 모이지 못한다고 말하셨으면 큰아버지만 못 오시는 게 아니고, 큰아버지와 첫째 고모, 셋째 고모 그리고 막내고모까지 다 못 온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그렇게 심기가 불편하셨던 것 같다.


며칠 뒤 어머니는 전화 한 통을 받으시고, 거실에서 TV를 보시던 할아버지께 말씀하셨더니, 할아버지는 환하게 웃으셨다.

큰아버지가 명절 당일에는 못 오시지만 다음날 오픈을 늦게 할 테니 고모들과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다는 소식이었다. 원래 점심 장사도 같이 하시는데 그날은 저녁장사부터 시작하시기로 결정하신 듯하다.


명절이 오기 며칠 전부터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진다.

우리 동네는 대대로 같은 성씨인 김 씨 집안에서 터를 잡아 점점 규모가 커진 동네였고 지금 우리 동네를 구성하는 가구들 중 절반 이상이 같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명절이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제사를 각각 지내기에 각 집안별로 제삿상과 음식들을 준비해야 됐다.

물론 그 준비는 모두 각 집안의 맏며느리들이 도맡아서 했다.

우리 엄마는 큰아버지가 있어서 맏며느리가 아니었지만 큰아버지가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셔서 어쩔 수 없이 맏며느리 역할을 다 해야만 했고, 명절 며칠 전부터 큰집들을 돌아다니며 각 집안의 맏며느리들이 모여 같이 음식을 하고 제사를 준비했다.

그래서 명절 일주일 전부터는 내가 먹는 밥상의 반찬도 전부 나물과 산적으로 바뀐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네.. 여보세요??"


한참 곯아떨어져 있다가 전화벨소리가 계속 울리자 잠이 덜 깨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몸을 움직여 겨우 수화기를 들었다.


"아들 일어났어?"

"네 엄마 방금요... "

"얼른 준비하고 누나 깨워서 아랫집 제일 큰집으로와"

"네.."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아침 7시였다.

원래는 9시쯤 천천히 울렸을 명절 아침 전화가 올해는 너무 일찍 울린 것 같아 놀랐지만 어제 아버지가 한 말씀이 기억이 났다.


"아들아 너도 이제 어느 정도 컸으니까 이번 명절부터 같이 아침 제사 지내러 다니자. 큰집 제사는 너무 일찍이니까 첫제사만 끝나고 내려와서 밥 먹고 그다음부터 같이 다니면 돼."


나는 아직 꿈나라에서 한창인 누나를 깨워 당장 가야 된다고 말했다.


"누나 일어나 가야 돼"

"아 나 안 간다고!!!"

"아니 지금 엄마가 밥 먹으러 오래"

"안 먹어 안 먹으면 되잖아"

"아 몰라 나 그럼 먼저 간다"


나는 엄마, 아빠가 무언가 해야 된다고 말하면 군말 없이 다 잘 따랐는데 누나는 아니었다.

더 자고 나중에 밥 먹겠다는 누나의 말에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나는 엄마가 오라는 곳으로 대충 옷을 입고 갔다. 큰집에 도착하니 집 앞에는 남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이미 큰집 제사는 끝났고 몇몇 어르신들이 밥을 드시고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시더니 얼른 부엌에 가보라고 손짓했다.

그곳 주방에 우리 엄마가 몇몇 아주머니들과 같이 있었다.


"아들 왔어?"

"네"

"얼른 밥 먹고 아빠 따라가"


나는 엄마가 차려주신 제삿밥을 대충대충 먹었다. 아침이라 입맛이 없었지만 나는 여기 큰집 밥이 1년 동안 기다려졌을 만큼 맛있었다. 특히나 제사가 끝나고 남은 전을 김치찌개에 넣어서 끓여주신 게 일품이었는데 나는 항상 두 그릇씩 먹었다.

밥을 어느 정도 대충 먹고아니 아버지가 들어오시며 나를 찾았다.


"아들 다 먹었어? 이제 다음 집으로 가야 돼"

"네.. 아빠는 밥 안 드세요?"

"원래는 제사가 다 끝나고 먹는 거야~"

"아...네"


집 밖으로 나와 아버지를 따라 다음 집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같은 동네라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몇 개의 집을 지나쳐야만 했다.

다음 집으로 가는 중에 길목에서 점점 정장에, 코트에, 패딩까지 시커먼 옷차림을 한 아저씨들, 할아버지들이 모여들었고 순식간에 수백 명은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나는 아버지를 잃지 않으려 아버지 뒤만 졸졸 잘 따라다녔다.

아버지는 오랜만에 뵙는 어르신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드리며 가볍게 안부인사를 건넸는데 그게 한 스무 명쯤 되는 것 같았다.

나이가 많은 순서로, 학렬이 높은 순서대로 집안에 들어갔고 집안이 꽉 차 마당까지 넘쳐 밖에 서있었다.

나와 아버지도 학렬이 낮은 순서였는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 서있었다.

안쪽 거실에는 병풍과 제사상이 거대하게 차려져 있었고, 높은 갓을 쓴 할아버지께서 마당을 한번 휙 훑어보시고는 이 정도면 됐겠다 싶었는지 제사를 시작하셨다.


"탁, 탁, 탁 "

젓가락을 식탁에 탁탁 치는 소리,

"활, 활, 활"

무언가 종이에 적어 불을 붙여 태우는 소리

"또르륵 또르륵"

술을 따라 그 재위에 몇 바퀴 굴려가며 제사를 지내셨다.


제사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고, 높은 갓을 쓴 할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실 때 앞에 계신 어르신들과 아저씨들, 마당에 있는 모든 아저씨들이 일제히 절을 했다.

나도 자연스레 몸이 같이 숙여졌는데 그 분위기가 정말 엄숙하고 존엄했다.

그렇게 절을 두 번 하고 제사는 끝이 났다.

아버지는 나를 보며 별거 아니지? 하는 눈빛을 보내시며 다음 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셨다.


처음 지내는 제사가 신기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나와 같은 집안 어르신들이 이렇게나 많은 건 처음이어서 놀라웠다. 좁은 집안에 사람들이 꽉 차있다가 나오니 아까보다 더 많아 보였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행렬을 보니 내가 제일 나이가 어린것 같았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내 나이 또래 아이들도 몇몇 있었다. 다가가 말을 걸어보려다가 그냥 아빠뒤에 붙어서 따라가는 걸 선택했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 집, 다음 집, 다음 집을 건너가며 총 10군데가 넘는 집을 들러서 제사를 지냈다.

언덕 위에 있는 집을 갔을 때가 제일 힘들었는데 며칠 전 내린 비로 올라가는 길이 전부 진흙으로 젖어서 신발도 더러워졌다. 멋들어진 구두를 신고 오신 어르신들은 진흙탕에 발을 빼시며 혼잣말로 욕을 하는 듯했다.

그동안 친구들과, 동네 형들과 동네를 돌아다니며 지나쳤던 집들이 전부 나와 같은 가족이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게 제사를 지내며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나서야 제사가 끝이 났다.


제사를 다 지내고 나니 시간은 점심시간이 되어 있었다. 마지막 집에서는 오전 내내 고생한 어르신들 중에 나이가 가장 지긋하신 분들이 머물러 식사를 하시기 때문에 나와 아버지는 다른 곳으로 가야 했다.


"아빠 우리 밥 어디서 먹어요?"

"엄마 있는 데로 갈까?"

"네!"


엄마는 아침에 나를 맞아주신 큰집 할머니네가 아니라 작은할머니네에 계셨는데 명절이 끝나면 항상 거기 계셨다 아무래도 작은 할머니가 우리 할머니와 가장 친해서 엄마도 거기에 계시는 게 마음이 편하신 듯했다.

작은 할머니는 나를 굉장히 이뻐하셨는데 명절에 올 때마다 용돈을 주셨다.


원래는 10시쯤 일어나 누나와 함께 할머니와 친한 몇몇 집안내 친척분들 집에만 다니며 점심을 먹고, 절을 하고 용돈을 받았었는데 오늘은 내가 아버지와 함께 제사를 지내는 바람에 다른 데는 들르지 못했다.

작은 할머니네 들어가니 이미 누나와 친척분들이 몇몇 모여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들 왔어? 아이고~ 고생했네"


엄마는 처음 제사를 지낸 내가 대견했는지 어깨를 토닥이며 어서 밥을 먹으라고 안내해 주셨다.

작은할머니도 안방에 계시다가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피우던 양담배를 재떨이에 털어 버리시고는 일어나서 나를 안아주셨다.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어른들 사이로 나는 맛있는 밥과 여러 가지 반찬들을 먹는데 정신이 팔려있었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작은할아버지, 작은 할머니 순으로 한 명씩 절을 하고, 안부를 묻고 용돈을 받았다. 올해는 많은 곳을 들르지 못했지만 그래도 제사를 지내고 나서 나가려는 나를 붙잡고 조용히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주시던 몇몇 어르신들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했다.


명절 다음날에는 엄마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가족들이 점심에 모이기로 해서 하루 종일 부엌에만 계셨다.

그렇게 큰아버지가 셋째 고모와 같이 들어오시고, 첫째 고모와 사촌형과 누나들, 막내고모와 이모부까지 모두 우리 집에 모였다. 할아버지는 북적북적한 거실을 보시고는 술을 드시지 않으셨는데도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어~ 술 한잔 해야지~"

큰 고모부는 항상 할아버지의 술친구가 되어주셨다.


밥을 다 먹은 우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순서대로 돌아가며 절을 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는 덕담을 하며 용돈을 쥐어주셨다.

TV를 틀어놓았지만 모두 어떻게 지내는지, 별일 없는지 안부를 묻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몇 시간 있다가 큰아버지가 이제 가야 된다며 고모들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벌써가려고!?"


할아버지가 밥 먹고 바로 일어선다며 버럭 화를 내셨는데 아쉬워서 하시는 말인 줄 알고 모두 웃어넘겼다.


"안녕히 가세요~!"


올해 명절은 밥을 먹고 다들 돌아가셔서 이전처럼 고스톱을 하다가 싸우거나 분위기가 험악해지지 않았다.

올해 명절은 조용하고 다복하게 잘 끝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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