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족

by 꾸꾸

"술 가져와~~"


굵고 거칠한 목소리로 으름장을 놓으시는 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시며 항상 하시는 말이다.


"어떤 걸로 드려요?"

"빨간 거 있잖아 그거"

"근데 지금 안주거리가 뭐 없는데..."

"아 그냥 가져와~"


할아버지는 매일매일 술을 드신다.

일반 사람들이 마시는 작고 동그란 잔이 아니고, 항상 물을 따라 바시는 투명한 유리컵에 가득 채워서 한 번에 꿀꺽꿀꺽 삼키셨다.

술을 드실 때면 얼마나 행복해 보이시는지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표정을 지으셨다.

할아버지는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는 술꾼이었는데 그것과 정반대의 별명도 가지고 계셨다.

'뒷구지 신사.'


"할아버지는 술을 그렇게 드셔도 단 한 번도 주정을 부리거나 실수하신 적이 없어~"


엄마는 가끔 나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해주신다.

술을 가져오라며, 안주를 달라며 말씀하시는 할아버지가 싫거나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항상 할아버지의 핀잔을 듣는 엄마는 할아버지를 좋게 보시고 계신 것 같았다.


"왜요?"

"할아버지는 딱 소주 한두 병만 드시고 취한 것 같으면 주무시거든 ~"


실제로 할아버지는 술을 많이 드시지 않았다.

좋은 사람과, 같이 시간을 나누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셨고 길을 가다 친구를 만나면 '이봐 김 씨 술 한잔 해'

하시고는 정말로 자리에 앉아 안주 없이 소주를 딱 한잔하시고 서로 갈길을 가시곤 했다.


게다가 할아버지는 집에서 밭일을 할 때 외에는 외출을 하실 때 항상 60,70년대에 신사들이 쓰고 다니는 중절모를 쓰고 다니셨고 고급 가죽으로 된 중절모 우측에는 화려한 깃털이 달려있었다.

겨울이면 코트에 셔츠, 구두까지 항상 풀세트로 차려입고 다니셨고 여름엔 점점 옷차림이 가벼워지셨지만 단 한 번도 외출하실 때 운동복이나 등산복 같은 편한 옷을 입고 나가신 적이 없었다. 그 더운 여름에도 여름전용 중절모가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런 할아버지는 고집스럽고 무서울 것 같았지만 나와 누나에게는 항상 다정하셨고 사랑스럽게 대해주셨다.

밖에 나갔다가 들어오실 때면 바나나, 과자, 호빵 같은 것들을 사가지고 들어오셨는데 아무래도 우리랑 같이 나눠먹고 싶으셨나 보다.


"이 영감탱이가 또 어디서 이런 걸 사가지고 왔어???"

"뭐? 이놈의 영감탱이!?!?"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모든 행동들이 마음에 안 드신 것 같았다.

뭐 하기만 하면 이놈의 영감탱이가로 시작해서 할아버지의 행동을 지적하셨는데 할아버지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이 이미 익숙하신 듯 웃어넘기며 잘 받아치셨다.

두 분 다 목소리가 커서 정말로 싸우시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얼굴은 서로 사랑스럽게 웃고 계셨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1살 차이였는데 할머니 15살 때 우리 할아버지와 결혼하셨고, 결혼식날 처음 할아버지를 봤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때 당시 뒷구지와 주변 시내에서도 알아주는 미남이셨는데 부모님들의 중매결혼으로 우리 할아버지를 예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었던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결혼 이후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할아버지는 동네의 평범한 할아버지들처럼 생기지 않았고 유럽 쪽 귀족연기를 주로 하는 키가 크고 훤칠한 할아버지들과 비슷하게 생기셨다.

반면에 할머니는 키가 작고 뚱뚱하셨는데 그런 할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지신적이 없었다. 할머니는 생활력이 강하고 똑 부러지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그때 당시에 여자가 결혼을 하면 단 한 푼도 물려주지 않았고, 대부분 남자에게 재산을 물려줬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4남 5녀 중 막내로 단 한 푼도 가져오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말이야 15살 때 이 영감탱이한테 시집을 왔는데 겨우 쌀 한 가마니 받아왔어"


할머니는 나와 누나를 앉혀놓고 가끔 옛날이야기를 하셨는데 항상 이렇게 인트로가 같았다.

'정말 많이 힘드셨나 보다... '실제로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아무런 재산 없이 쌀 한 가마니만 받고 결혼을 하셨고, 이 집 저 집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셨다. 낮에는 밭일, 오후엔 논일, 저녁엔 짚을 꼬아서 방석이나 고무신 같은 걸 만들어 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지금 살고 있는 조그마한 집을 직접 동네 아저씨들과 지으셨다고 했고 지금까지도 튼튼하게 잘 버티고 있는 거 보면 정말 신기했다. (매일 저녁 곱등이가 나오고 비만 오면 다리가 수백 개 달린 노리개가 나왔는데 매일 보니 징그럽지 않았다.)


할머니는 돈의 흐름과 재산이 어떻게 쌓이는지, 자산을 어떻게 불리는지 어디서도 배우지 못하셨지만 공부를 훨씬 많이 한 사람들보다도 더 이해력이 깊고 통찰력이 대단하셨는데 그 옛날에 어렵게 번 돈으로 주변에 싸게 나온 땅을 사셨다.

밭과 논을 하나하나 전부 사셨고 뒷구지 외곽의 대부분의 땅이 할머니와 할아버지 소유라고 하셨다.

아빠와 가끔 일산 쪽으로 볼일을 보러 나갈 때면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서 갔는데

아들아 여기가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힘들게 돈 벌어서 사신 땅이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크기가 끝도 없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정말 어마어마한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결혼하시고 철도청에서 기관사로 잠시 일하신 적이 있었는데 한창 능력을 인정받고 돈도 잘 벌 수 있을 때 6.25 전쟁이 터졌다고 하셨다.

밥 먹다가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텃밭에 나가 엎드려있었고 번화가에는 군인들이 수도 없이 많이 돌아다녔다고 하셨다.

그때 할아버지가 근무하던 근무지에서 할아버지의 근무지를 의정부인가 포천 쪽으로 옮겨야 된다고 통지가 왔었는데 그때당시 전쟁통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할머니의 권유로 할아버지는 철도청 일을 그만두고 할머니와 같이 농사를 지으셨다고 했다.

가끔 할머니는 그때 전방으로 가서 일을 하셨다면 정말 위험한 일이 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 계속 철도청에 다니셨다면 엄청 높은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면서 아쉬워하시기도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으로 큰아버지와 4명의 고모들, 그리고 우리 아버지가 계셨다.

큰아버지는 왼손에 의수를 차고 다니셨는데 젊었을 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잘못하여 왼손이 기계에 잘려나가셨다고 했다. 그 뒤론 손모양의 의수를 차고 다니셨는데 의수를 가리기 위해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다니셨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상관없이 색만 다른 셔츠에 청바지는 큰아버지의 트레이트마크였다.

큰아버지는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못하셨는데 젊었을 때 팔이 다치기 전에 결혼까지 생각했던 사랑하던 사람이 었었지만 그 여자는 큰아버지와 결혼한다고 했지만 큰아버지는 장애인과 결혼하는 여자가 불쌍해서 그 여자를 모질게 끊어내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이가 들었음에도 아직까지 다른 여자를 못 찾으셨다.

가끔 착하고 순한 베트남 여자를 알아보시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그마저도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큰아버지가 결혼을 못한덕에 셋째 고모도 결국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으셨다.

셋째 고모는 다른 고모들보다 가장 성격이 순하고 착하셨는데 팔이 다쳐서 결혼하지 못하는 큰오빠를 두고 먼저 결혼은 못하겠다고 하신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둘째 고모는 몇 년 전 명절에 가족끼리 모인 자리에서 밥상을 엎으며 큰소리로 저주를 퍼붓고 집을 나가셨는데 그 뒤로 아직까지 연락이 없으셨다. 나와 누나, 그리고 사촌들도 집 밖에서 노느라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재산과 관련된 이야기인 것 같다고 누나가 말했었다.


우리 집 고모들은 다들 할머니를 닮아서인지... 힘든 유년시기를 보내서인지... 한 성깔씩 했는데

전혀 알 수 없는 포인트에서 갑자기 화를 버럭 내거나 혼자 삐져서 발광을 한다던지 말없이 집에 가곤 했다.

나는 그런 고모들을 보며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항상 저런 행동은 좋지 못한 행동이니 절대로 따라 하거나 기억하지도 말라고 당부하셨다.

정말 웃긴 건 그렇게 싸우고 헤어졌어도 다음 해 명절에는 다 같이 모여 웃으며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거였다.

결국 밥 먹고 고스톱을 치다가 누군가 화를 내고, 판을 뒤엎고, 집에 가고... 똑같이 반복되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친가 쪽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행복하게 무언가를 하는 것은 별로 기억나는 게 없었다.

아주 어릴 때 다 같이 동해로 해돋이를 보러 7시간인가 8시간 동안 운전해서 갔던 기억이 우리 친가 쪽 가족들과 무언가를 같이한 추억이 마지막이었다. 다들 먹기살기 바빠서 명절에나 밥 한 끼 먹으러 내려오는 게 다였기 때문이었다. 가끔 고모들과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버지가 여행을 가서 사진을 찍어 자랑을 하시곤 했는데 항상 우리 아빠는 빠져있었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걸 좋아하시는 할아버지는 몇 개월 전부터 딸들이 언제 오는지 물어보셨다.

이번 명절은 다 같이 웃으며 끝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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