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선생님
"어 안녕"
나와 키가 비슷하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에 비쩍 마른 상민이가 엄마 친구로 보이는 어떤 아줌마 뒤에 서있었다.
"상민아 너도 인사해야지"
"안녕~"
나보다 더 낯을 가리는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인사를 건넸다.
"아들 우리 동네에 드디어 친구가 생겼네?"
"이번에 새로 이사 오게 됐어 아들이 친하게 지내~?"
동네에 또래 남자가 나 혼자라는 사실이 항상 마음에 걸리셨던 엄마는 우리 동네로 새로 이사 온 상민이와 그 아주머니를 나에게 소개해주셨고, 나보다 더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상민이 어머니는 키가 크고 눈이 엄청 크셨는데 부리부리한 눈이 상민이 눈과 똑같았다.
그날 이후로 나와 상민이는 단짝 친구가 됐다.
상민이네 집은 학교에서 더 멀리 떨어진 우리 마을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어서 학교를 갈 때면 항상 우리 집을 지나가야 됐기 때문에, 아침마다 늘 등교와 하교를 같이했다.
처음에는 동네 소개부터, 친구들 소개까지 내가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 줬다.
우리 동네 홍 씨 아저씨, 놀기 좋아하는 형들, 서로 일거리 나누어서 도와주고 계시는 아주머니들, 무엇보다 효정이를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상민이가 이사오고부터 나는 집 밖으로 뛰어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평일 아침에는 부지런한 상민이가 언제나 나를 마중 나왔고, 나는 부랴부랴 뛰어나갔다.
주말엔 항상 같이 놀자며 우리 집 앞 대문에서 나를 기다렸고, 학교가 끝나고 집에서 쉬다가도 상민이는 우리 집 앞에서 나와 놀자며 소리쳤다.
"놀자!!"
한동안 혼자 집에서만 보내던 시간이 많았던 나는 누군가 나를 찾아와 준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벅찼다.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는 상민이에게 미안해서 놀자는 소리가 들리면 번개처럼 뛰쳐나가곤 했다.
아마, 상민이가 이사 온 뒤로부터 상민이도 뒷구지 저녁 놀이 팸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홍 씨 아저씨의 땅따먹기 놀이, 형들과의 깡통차기, 동네 누나들과의 고무줄놀이 나는 내가 늘 다니던 곳에 상민이를 데리고 다니며 항상 같이 다녔다.
상민이가 이사를 온건 2학년이 되고 몇 개월 후였는데 그동안 반 친구들과 어느 정도 친해진 상태라
내가 다른 동네에 사는 친구들도 상민이에게 소개해주었다.
처음 전학 왔을 땐 담임 선생님이 상민이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내 옆자리에 앉혀주시기도 하셨다.
나와 상민이가 같이 학교생활에 적응해 가고 있을 때 그 일이 발생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전 시간인 실기시간에 배운 요리 사진들이 너무 맛있게 보여서 우린 책을 보며 같이 이야기했다.
"와.. 돈가스 진짜 맛있겠다..."
"너 돈가스 먹어봤어?"
"그럼! 지난주에 엄마랑 같이 먹었어!"
"와..."
나와 앞자리에 앉은 친구는 그 책을 들여다보며 어떤 음식이 먹고 싶다, 어떤 음식이 맛있겠다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몇몇 친구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상민이도 다른 친구들과 공기놀이를 하다가 내 자리에 사람이 모여있는 게 궁금했는지 우리 쪽으로 왔다.
"야 이거 봐봐 스파게티야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어? 전자레인지가 아니야? 이거 뭔데?"
"오븐이라고 써져 있는데?"
"오븐? 전자레인지랑 달라?"
나랑 앞자리 친구가 마침 맛있어 보이는 스파게티를 집에서 오븐으로 조리하는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오븐이 뭔지 잘 몰랐던 앞자리 친구는 오븐이 뭔지 계속 물어보았다.
나도 오븐이 뭔지 잘 몰랐는데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피자집에 가면 늘 먹는 오븐 스파게티가 생각이 나서
아는 척을 좀 했다.
"야 이거 엄청 큰 기계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거야~"
"와... 신기하다 이거 먹어봤어?"
"그럼! 우리 집에도 있어!"
오븐에 스파게티를 요리해서 먹어봤다는 말에 주면 친구들이 신기해하는 모습에 어깨가 으쓱해져 나는 거짓말을 하게 되었다.
그때 상민이가 한마디 했다.
"너희 집에 오븐 없잖아"
나는 그 말을 듣고 아차 싶어, 평소 같았으면 빠르게 인정했었겠지만 주위에 친구들의 시선과, 내가 집에서 오븐으로 요리를 해 먹는 잘 사는 아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 친구들 앞에서 돌연 나도 모르게 말이 헛나왔다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오븐이 뭔지나 알아!?"
"뭐? 너네 집에 내가 맨날 가는데 무슨 소리야?"
"그니까 네가 오븐이 뭔지나 아냐고!"
나와 상민이는 작은 말 한마디가 서로의 자존심을 지키는 수단으로 번졌고, 분위기는 점점 경직되어 갔다.
주변 친구들도 막상 말리지는 못하고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었다.
"알아! 너네 집에 전자레인지도 없고 밥솥하나 있잖아!!"
그 말 한마디가 나의 마음속에 깊게 들어와 내 감정들을 후벼 팠다.
그렇게 상처 입은 나의 감정들이 화살이 되어하면 안 되는 말을 상민이에게 던졌다.
"뭐라고? 너네 집은 다른 사람 집 단칸방에 얹혀살면서 밥솥이나 있기나 하냐!?"
그렇게 말하면 안 됐다.
말을 내뱉고 나자마자 바로 후회를 했다.
하지만 이미 말이 나오고 상민이에게 전달된 후였다. 돌이킬 수 없었다.
"퍽"
상민이는 그 말을 듣고 눈동자가 파르르 떨리더니 몇 초간의 정적이 흘러 결국 주먹으로 내 얼굴을 가격했다.
내 얼굴 이마 중앙을 가격한 상민이의 주먹은 아프지 않았다. 내 말로인해 상처받았을 상민이의 심정을 생각하니 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친구들 앞에서 나에게 모멸감을 주고, 주먹으로 나를 떄린 이 상황에서 그냥 웃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상민이를 떄리는 대신 온몸으로 상민이를 밀치며 허리와 어깨를 붙들어 맷 다.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반 전체 학생들이 우리에게 달라붙어 싸움을 말렸다.
내가 상민이에게 집중하는 나머지 주변을 둘러볼 상황이 아니었지만 로마시대 콜로세움에서 경기를 하는 전사처럼 나와 상민이를 중앙에 두고 관객들이 원형으로 빙 둘러 우리 싸움을 지켜보았다.
말린다는 것은 형식이었고 사실 우리의 싸움을 즐기는 것 같았다.
"개새끼야 이거 놔라"
"닥쳐"
나와 상민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졌고, 서로 온몸을 붙들며 힘겨루기를 했다.
서로 타격을 하거나, 무기를 이용해 상처를 입히지는 않았다.
그때였다.
"드르륵"
"그만!!"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중년의 여성 목소리가 크고 단호하게 들려왔다.
담임선생님이었다.
누군가 사무실로 달려가 선생님에게 일러바친 게 틀림없었다.
담임선생님의 한마디로 나와 상민이를 둘러싼 관객들은 일사불란하게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나와 상민이는 아직 감정의 골이 커져 선생님의 불호령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말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나와 상민이의 감정은 격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너희 둘! 지금 선생님이 하는 말 안 들려! 정말 혼나고 싶어!?"
우리 옆으로 바짝 다가온 선생님은 아까보다 더욱 큰 소리로 소리치며 양손으로 나와 상민이를 떨쳐냈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나와 상민이는 적당히 떨어져 서로를 뚫어지게 째려보며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은 감정을 주체하며 씩씩거렸다.
"너희 둘 왜 싸웠어?"
"....."
나와 상민이는 자존심 싸움이라도 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흠...."
선생님은 그런 우리 둘을 보며 화가 머리끝까지 나셨는지 잠시 무언가 생각하시더니 반 전체에 한 말씀하셨다.
"지금 교실 가운데 있는 책상 전무 비워"
교실 안에는 30개 정도의 책상과 의자가 있었고, 분단으로 나뉘어 2열 종대로 4개의 열로 되어있었는데
선생님은 갑자기 교실 가운데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바깥으로 옮기라고 하셨다.
정확히 나와 상민이가 서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교실 가운데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옮겼고, 교실은 말 그대로 콜로세움처럼 나와 상민이를 중앙에 둔 채 책상과 의자, 그리고 선생님과 학생들로 빙 둘러싸여 있었다.
"반장 얘네 둘 왜 싸웠는지 말해"
"그게..."
교무실로 선생님을 부르러 간 것은 반장이었다.
"둘이 책 보다가.... 스파게티 사진... 보다가... 오븐 있냐고...."
반장도 지금 이 상황이 당황스럽고 무서웠는지 벌벌 떨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충 어느 정도 이해한 것 같은 선생님은 반장을 다시 자리로 들여보냈고, 나와 상민이를 보며 말했다.
"너희 둘 친하게 지내야 될 학생들이 별것도 아닌 걸로 싸웠어."
"그리고 선생님이 말했는데도 대꾸도 안 하고 무시했지"
"너희들은 혼나야 돼."
교실에서 싸우고 선생님말에 대꾸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잘못은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기에 혼나는 건 맞다고 생각했다. 그래봤자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몇 대 맞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를 왜 가운데에 멀뚱하게 세워놨지?라는 생각을 했다. 상민이를 보니 상민이도 이제는 분노와 공격적인 감정에서 이 상황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모습처럼 보였다.
"무릎 꿇어"
나와 상민이는 지금 상황이 갑자기 너무나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우리를 재판하는 판사가 되어있었고, 주위 학생들은 공개처형을 지켜보는 관중이 되었다. 지금 상황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고, 점점 무서워지는 분위기가 두려워 선생님의 말에 복종했다.
교실 중앙에 선생님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앉은 나와 상민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너희는 건방지게 선생님 앞에서 싸우고 내 말을 무시했어."
"그니까 맞아야 돼"
이 말을 남긴 채 터벅터벅 10cm는 되어 보이는 검은색 높은 구두샌들을 신은 구두발자국이 들리더니 갑자기 큰 소리가 났다.
"퍽"
나는 바닥을 쳐다보고 있던 나의 눈과 고개를 돌려 상민이를 보았다.
상민이가 뒤로 굴러 내동댕치 쳐져있는 게 아닌가?!
이게 무슨 상황이지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바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아,, 아니 선생. ㄴ"
내가 뭐라고 말을 내뱉기도 이전에 선생님은 내 앞으로 다가와 똑같이 구둣발로 내 명치를 온몸으로 걷어찼다.
"퍽"
선생님이 늘 신고 다니는 높은 굽의 구두샌들이 내 가슴에 정확히 들어와서 꽂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무릎 꿇고 있던던 곳에서 두 바퀴 굴러 맨바닥에 누워있었고, 그 자리에 선생님이 우리를 벌레 보는듯한 눈빛으로 나와 상민이를 내리깔고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제자리로"
교실 바닥에 뒹굴어있는 나와 상민이를 보며 단호하게 명령했다.
몸을 일으켜 가려고 했으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가슴에서부터 시작된 통증이 온몸을 쥐고 흔드는 것 같았다.
나보다 먼저 맞은 상민이는 겨우 일어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무릎을 꿇었다.
나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겨우 몸을 일으켜 제자리로 갈 수 있었다.
"둘이서 싸웠으니까 두대 맞아"
똑같은 일이 한번 더 일어났다.
"퍽"
....
"퍽"
...
'정리해'
나와 상민이는 구둣발에 맞은 가슴을 움켜잡으며 교실바닥에 누워있었고, 선생님은 반장을 바라보며 교실 책상과 의자, 그리고 나와 상민이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놓으라는 의미로 한마디 말하고는 교무실로 돌아갔다.
그날 나와 상민이는 집에 같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엄마나 주변 어른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두렵고 무섭기도 했지만 잘못해서 혼난 것뿐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뭐가 잘못됐는지 정확히 판단하지 못했다.
선생님은 이날을 기점으로 점점 변해갔다.
더 폭력적이고, 더 가학적이고, 더 파렴치하게...
악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 일이 얼마 있고 난 후 나와 상민이는 자연스레 화해하고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갑자기 상민이의 아버지가 건강상의 문제로 돌아가게 되시면서 상민이는 엄마와 함께 이사를 가게 됐다.
당연히 짧았던 뒷구지에서의 삶도 끝이었다.
나는 또다시 그렇게 친구 한 명을 잃었다.
뒷구지에 내 나이 또래 남자아이는 다시 나 혼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