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탁이
딩동댕동~ 딩동댕동~
"차렷!"
"선생님께 인사~"
"안녕하세요~"
"그래~ 좋은 아침이다~"
종소리가 학교 전체에 울려 퍼진다.
우리 반도 예외는 아니다.
아침 종소리가 울리면 각자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 앉는다. 책상에 만화책을 펴고 읽던 친구도, 교실 뒤에서 이리저리 실랑이를 하며 장난치던 친구도, 화장실에서 종소리를 듣고 서둘러 들어오는 친구까지 모두 자리에 앉으면 그때 선생님이 높은 구두샌들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따각 따각 따각"
"드르륵"
문 소리가 들리자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사방은 적막해진다.
선생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이다.
"모두들 안녕~"
가장 먼저 그 적막을 깨는 건 선생님이었다. 부리부리한 눈과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들어온 선생님은 가볍게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교탁 앞에 섰다.
그 뒤 정해진 규칙처럼 반장이 일어나 학생들을 주목시킨 뒤 선생님에게 인사를 했다.
"그래 오늘 첫 수업은 슬기로운 생활시간이네~ 책 안 가져온 사람?"
"없으면 수업 시작한다~"
"자~ 36페이지~"
오늘은 선생님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보통은 아침인사를 하고 학생들의 두발이나 청결상태를 보고 체크를 하며 손톱이 길거나, 냄새가 난다거나 하는 아이들을
골라내 따로 혼내셨기 때문이다.
"얘들아~ 지금은 몰라도 나중에 우리가 물을 사 먹은 시대가 올지도 몰라~ 실제로 세계 다른 나라에서는 물을 사 먹기도 하고, 심지어 공기도 사서 먹는 날이 오겠지?"
"에이~ 설마요~ 어딜 가나 물이 콸콸 쏟아지는데요?"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말도 안 된다는 얘기인 듯 장난을 쳤다.
우리는 물이 나오는 곳 어디서든 아무 걱정 없이 물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학교 운동장 수돗가의 수돗물, 집안 부엌의 싱크대물, 화장실 세면대물까지 그냥 물이 있는 곳 어디서든 투명한 물이 나왔고 이 물이 먹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다.
근데 물을 돈 주고 사 먹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수업은 보통 두시쯤 끝이 났다. 점심을 먹고, 한 번의 수업을 더 들으면 집에 갔다.
우리 학교는 인원수는 적지만 밥은 꼭 잘 챙겨 먹어야 된다는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있어 학교 건물 절반만 한 급식소가 지어졌고, 그곳에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어머니들이 봉사활동을 하며 요리화 배식까지 직접 해주셨다. 우리 엄마도 몇 번 가서 했었는데 나는 항상 엄마에게 배식할 때 맛있는 반찬 나오는 걸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엄마가 학교 배식 봉사활동을 한 날이면 그날 먹었던 음식들이 투명한 비닐봉지에 쌓여 집 냉장고 한편에 놓여있었다.
"자~ 오늘도 고생 많았고~ 집에 조심히 가고~ 내일 보자!"
"아, 영탁이는 끝나고 교실에 남아있고~"
"차렷"
"선생님께 경례!"
"고생하셨습니다~!"
우리 반엔 조금 특별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생김새도, 말도, 행동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언제나 두 가지 표정이었다.
얼굴에 눈물이 번져 일그러진 체 서럽게 울거나, 튀어나올듯한 눈을 부라리며 온갖 인상을 쓰는 화난 얼굴.
영탁이었다.
처음 영탁이를 보았을 때는 영탁이가 이런 특이한 친구일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아니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선생님도, 부모님들도 그 누구도 얘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같이 생활을 하며 모든 상황에 과민반응을 하는 영탁이는 매일매일 불안과 공포의 연속이었다.
어떤 말을 하던, 어떤 상황이 되었던 누군가와 접촉이 있으면 그 친구에게 버럭 화를 냈고, 소리치며 물건을 집어던졌다.
그리곤 선생님이 들어오셨고, 그 뒤로는 언제나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죄송하다며 싹싹 빌었다.
나도 영탁이를 처음 만나 인사를 했을 때 달갑게 맞아주지 않아 조금 불친절한 친구인가~ 하고 생각을 했었는데 다른 친구들과 여러 번 싸움이 나는 것을 보고 나는 그 뒤부터 아얘 영탁이를 피해 다녔다.
싸우는 게 너무나도 싫었기 때문이다. 누가 나한테 소리치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시간이 지나 영탁이는 점점 혼자가 되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영탁이에게 말도 걸지 않았고, 주변에 지나가는 것도 싫어했다. 수업 중 어쩔 수 없이 같은 조가 되거나, 숙제를 해야 될 상황이 아니면 최대한 영탁이와의 접촉은 피했다. 하지만 우리 반에 몇 명 늘 말썽을 피우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달랐다.
그런 영탁이에게 다가가 오히려 더 말을 걸고 놀렸다.
"야 너 바보냐?"
"뭐!?"
"너 바보지? 너 바보냐고"
"아니야!! 아니라고!!! 나 바보 아니라고!!!!!"
그 친구들은 영탁이를 놀리는 것을 즐겼다.
하루같이 매일매일 놀렸고 눈에 보일 때마다, 심심할 때마다 영탁이에게 다가가 바보냐고 놀렸다.
그럼 영탁이는 그 말 한마디에 발작 버튼이 눌려 얼굴이 시뻘게지며 자기는 바보가 아니라며 난동을 피웠다.
"내가 너네 장난감이야!!!!!"
영탁이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그 친구들의 장난에 무섭게 반응했고, 하루는 필통을 던졌는데, 필통 안에 있던 샤프가 튕겨져 나와한 친구의 얼굴에 샤프가 박혔다.
"윽..."
그 상황을 본 친구들은 얼굴에 샤프가 박힌 친구를 데리고 바로 양호실로 데려갔고, 그날 학교가 끝나갈 무렵 영탁이 어머니의 얼굴을 처음 봤다.
헝클어진 짧은 갈색 머리에, 피부가 하얬지만 얼굴 곳곳에 여드름이 많이 나있었다. 영탁이 어머니는 우리가 수업이 다 끝날 때까지 교실 밖에서 기다리셨고, 선생님은 지금까지 중에 가장 빠른 종례를 했다.
그리곤 교실 밖에서 영탁이 어머니와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데, 영탁이 어머니는 입을 손으로 가리며 크게 놀란 듯했다.
그 뒤 선생님과 영탁이 어머니는 교무실로 갔고, 교무실에서 선생님과 영탁이, 영탁이 어머니 그리고 얼굴 한쪽 볼에 반창고를 붙임 강일이와 강일이 어머니가 심각한 이야기를 했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강일이는 크게 다쳐 보이지 않아서 다행인 듯했다.
다음날 영탁이와 강일이는 별 문제없는 듯이 학교에 등교했고, 그 친구들은 당분간 영탁이를 괴롭히지 않았다. 대신 학교가 끝나고 선생님은 영탁이를 따로 남겨 방과 후 수업을 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다른 곳에 들르거나 주변에서 놀지 않고 바로 집으로 왔다.
"아들~ 학교 끝나면 어디 다른 데 가지 말고 바로 집으로 와야 돼~?"
매일 같이 귀가 닳도록 이야기하시는 엄마의 말을 거역했다간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고, 내곡동 남자 친구는 나 혼자였기 때문에 하굣길도 언제나 혼자였다.
종종 효정이가 마을 골목에 서성이고 있을 것 같아 전속력으로 집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그래서 방과후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어나는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보통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방향이 같은 친구들 몇몇이 모여 운동장에서 놀거나 학교를 배회하거나, 다른 동네를 돌아다니거나 했는데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몇몇 친구들이 교실 뒤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어제 봤어...?"
"하... 그러게... 어떡하냐..."
"진짜 미쳤나 봐"
"영탁이 불쌍해서 어떡해...?"
"아 몰라... 엄마한테 말도 못 하겠어 무서워서..."
그 친구들은 어제 방과후 학교에서 무언가를 봤고, 내 귀에 가장 또렷이 들린 단어는 '영탁이 불쌍해서 어떡해'라는 말이었다. '영탁이가 불쌍하다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너무 궁금해서 그 친구들한테 다가가 물었다.
"야 무슨 일인데?"
그러자 친구들은 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모른 체했다.
"아냐 넌 몰라도 돼"
"뭔데 그래?"
"몰라 그런 게 있어"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번 더 물어보려다 그 친구들의 반응이 기분 나빠서 그냥 무시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친구들의 말이 너무 궁금했지만 그냥 별일 아니겠거니... 하고 잊어버렸다.
강일이는 이제 피부가 완전히 회복이 되고, 상처도 잘 아물어서 한쪽 뺨에 샤프가 박혀있었다는 걸 누가 말하지 않는 이상 전혀 알지 못할 정도였다.
강일이와 친구들은 서서히 다시 영탁이를 괴롭히기 시작했는데 예전에 강일이가 크게 다친 경험이 있어서 이전처럼 짓궂게 놀리진 않았다.
하지만 영탁이가 분노하고 소리치기엔 충분했고, 교실에는 매일같이 영탁이의 소리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교실로 오셔서 싸움을 말렸고, 영탁이에게 강렬한 눈빛을 쏘아대셨다.
그리곤 늘 알지 못하는 말씀을 하셨다.
"오늘은 더 추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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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이 사태가 있고 얼마나 더 지났을까?
입고 있던 옷이 점점 가벼워지며 반팔과 반바지를 입게 되었고, 집에서는 언제나 선풍기를 틀어놓았다.
오늘은 학교에서 별다른 큰일이 없었다.
늘 반복되는 영탁이의 소동은 이제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준이 되었다.
학교가 끝나고 정해진 청소 구역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똑같은 패턴으로 책가방을 메고 집으로 향했다.
높은 계단을 지나, 내곡교회를 지나, 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났을 때쯤 아침에 엄마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아들~ 오늘 학교 끝나면 선생님한테 이거 꼭 전달해 드려~ 알겠지?"
며칠 전에 받은 가정통신문에 엄마가 우리는 따로 전해드려야 될 것이 있다며 오늘 방과 후에 선생님에게 따로 드리라고 가정통신문에 무언가를 뺴곡이 적어서 주셨는데 드리지 못했다.
"하...."
뒤돌아 학교를 보니 이미 절반 이상 집까지 와버린 상황이었고, 유독 오늘따라 학교가 더 멀어 보였다.
"에이"
나는 어쩔 수 없이 다시 발걸음을 되돌려 학교로 갔다.
교무실은 학교 1층 중앙에 있어서 중앙현관으로 들어가도 됐지만, 나는 1학년, 2학년 교실을 거쳐가는 건물 입구 쪽 현관문으로 들어가서 신발을 벗고 맨발로 교무실로 복도를 걸어갔다.
1학년 교실을 지나며 내가 작년에 수업을 들었을 때를 회상하며 아무도 없는 고요한 교실을 훑어보며 지나쳤다.
그때였다.
1학년 교실을 반쯤 지났을까?
우리 교실 쪽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려왔다.
"탁!"
"탁!"
"탁!"
소리는 끊이질 않았다.
"탁!"
"탁!"
"탁!"
"탁!"
"똑바로 대!!"
끊이지 않는 탁탁 거리는 소리 와중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님 목소리였다.
"선생님..!!! 잘못했어요!!! 너무 아파요!!!!"
"너 오늘도 친구 괴롭혔지!!?? 내가 하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탁!"
"탁!"
"탁!"
익숙한 목소리가 한 명 더 있었다.
영탁이었다.
"애들이 자꾸 놀리는데 어떻게 해요!! 선생님 너무 아파요...!!"
영탁이는 흐느끼며 선생님에게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탁!"
"탁!"
"똑바로 대!! 움직이면 뼈 부러진다!!!"
나는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발뒤꿈치를 들어 최대한 소리를 내지 않았고, 숨소리도 나지 않도록 숨죽여 우리 교실로 다가갔다.
교실 앞문에는 내 키보다 살짝 더 높은 높이에 유리로 되어 안쪽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그 틈으로 한쪽눈만 살짝 내밀어 안을 들여다봤다.
영탁이는 종아리를 걷어 한쪽으로 돌아서있었고, 서럽게 울며 울부짖었다.
선생님은 그런 영탁이를 앞에 세워두고 의자에 앉아 기다란 쇠막대기로 영탁이의 종아리를 연신 타작했다.
이미 영탁이의 종아리는 피떡이 되어있고 몇 대나 때렸는지, 아니 얼마동안이나 이런 매타작이 지속됐는지 종아리가 끔찍하게 터져있었다.
"너는 제정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정신 차릴 때까지 맞아야 돼."
"오늘은 말썽 피웠으니까 500대 더 추가야"
나는 그대로 뒷걸음질 쳐 학교를 도망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