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일점

태양의 둘레를 도는 행성의 궤도 위에서 태양과 가장 가까운 점

by 냄도

북반구를 기준으로, 지구가 태양과 가장 가까운 시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매년 1월 초순이다.


지구는 그의 주변을 맴돈다. 지구는 부끄럼이 많아 그에게 성큼 다가가진 못한다. 한참을 맴돌다가, 지구는 크게 결심하여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다. 지구는 내심 기대한다. 자신이 다가가면, 자신을 한 번쯤은 봐줄 거라고, 그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그래서 지구는 그를 향해 한 발짝을 주뼛 내디딘다.


지구는 이제 그를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의 형상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지구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를 보며, 그에게 더욱 매료된다. 그가 지구의 마음에 스며든다. 지구는 그의 바다에 잠겨 죽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그는 지구에게 눈길 한 번을 주지 않는다. 그는 지구가 자신을 향해 헤아릴 수 없는 용기를 내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그는 여전히 무심하다. 지구는 그와 분명 가까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보다. 오히려 서로가 생각하는 서로의 거리가 달라서일까, 지구는 묘하게 전보다 더한 어색함을 느낀다. 지구의 마음에는 시린 바람이 분다. 지구의 마음이 얼어붙는다. 지구의 마음이 흰 눈으로 뒤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지구는 실망했다. 실망했다는 표현으로는 지구의 아린 마음을 온전히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는 비참한 마음을 부여잡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도망가듯 뒷걸음질 친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한참의 거리를 도망갔을까, 지구는 정신이 든다. 오히려 그와 멀어지니 황량한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지구는 자기보다 더 가까이에서 그의 주변을 맴도는 수성과 금성을 발견한다. 지구는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지구는 이내 자신이 여전히 그를 절실하게 원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래서 지구는 결심한다.


그와 간신히 멀어진 지구는 다시 그를 향해 다가간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다시 튕기듯 발걸음을 돌린다. 그러나 지구는 결코 그를 향해 다가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그랬듯 지구에게 한 줌의 시선도 주지 않을 것이고, 지구는 또 상처를 받겠지.


지구는 그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그의 마음이니까.


지구는 그와 일정한 거리 이상으로 멀어질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지구의 마음이니까.


지구는 소멸하는 순간까지 그의 주변을 맴돌며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것이 지구의 지독한 운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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