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에 오는 비
신은 눈을 한 줌 집어 들고, 세상의 어느 부분을 향해 뿌렸다. 그것은 으레 있는 일이었다. 눈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 맹렬하게 달려갔다. 눈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닿는 곳의 온기를 빼앗고 생명의 기운을 소멸시키는 것. 다가올 봄에 피어날 새로운 무어를 위해 세상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 그것이 눈의 임무이자 신이 눈을 뿌리는 이유였다. 이윽고 온 들판이 하얀 눈으로 덮였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기만 했다.
여기 눈발 사이에 따뜻한 빗방울이 하나 있다. 신의 실수였는지, 유독 마음이 따스한 눈송이가 빗방울이 된 것인지는 아무렴 알 수 없다. 빗방울은 설원 위에 툭, 하고 내렸다. 빗방울은 주변에 쌓인 눈을 녹일 만큼 따뜻했다. 빗방울이 눈을 녹이고 나니, 녹은 눈은 다시 주변의 눈을 녹였다. 그렇게 인근의 눈은 모두 녹아 땅으로 스미었다.
땅속에는 신의 눈을 피해 숨어든 생명이, 생명의 씨앗이 있었다. 그들은 겨울과 눈이 끝나고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은 아직 하얗고 차가운데, 그들은 난데없는 따스함을 마주하였고, 곧이어 생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얼마 후 땅 위로 자라 생명이 피어났음을 알렸다. 새하얀 세상에 초록의 무언가가 빼꼼히 나타났다.
신은 세상을 살피다 난데없는 초록을 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절이 한 바퀴 돌고 다시 겨울이 오자, 신은 어김없이 눈을 뿌리려 손을 움켜쥐었다. 신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감돌았다. 신은 움켜쥔 손을 놓았다. 눈발이 흩날렸다. 눈은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눈 사이에는 따스한 빗방울이 또 있었다. 그것은 신의 실수도 아니고, 유독 마음의 따스한 눈송이가 빗방울이 된 것도 아니었다. 빗방울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신은 그 후로, 매 겨울 눈을 내릴 때 꼭 한 방울의 비도 같이 내리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