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질 무렵이 되면 불안, 혼란, 초조함 등의 증상이 심해지는 현상
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무렵이다. 당시에는 온 가족이 큰 방에 다 같이 모여 잠을 자곤 했는데, 방문과 가장 가까운 바깥 자리가 내 자리였다. 여름이면 날씨가 더워 방문을 열어놓고 잤는데, 방문을 열면 현관문이 그대로 보였다. 현관문은 허리 아래로는 철제로 되어 있고, 허리 위로는 굴절이 심하게 굴곡진 유리로 되어 있었는데,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던 것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가로등이나 어느 불빛들이 현관문에서 괴상한 형체로 바뀌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마치 불빛을 발하는 귀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고개를 안쪽으로 돌려 일부러 쳐다보지 않으려 하면, 옆에서 자는 가족들에 가로막혀 답답하고 더웠다. 바깥은 무섭고 안은 덥다. 일곱 살 먹은 당시의 나로서는 아주 심각한 곤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밤이 무서웠다. 해가 지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 오는 것이 싫었다. 혹시 자기를 빤히 보는 나를 보고 화가 난 불빛 귀신이 나를 잡아가면 어쩌나. 밤은 무척 길었다.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어느새인가 지쳐서 잠에 들곤 했다. 나이를 먹고, 이사를 하면서 그 무서움은 점차 사라졌다.
내가 고등학생쯤 되었을 무렵이다. 아버지께서 건강검진 도중 담낭 안에 악성 종양이 있다는 판정을 받으셨고, 담당 의사가 암 판별을 위한 조직검사를 위해 수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입원하게 되셨다. 당시 외조부모님이 병문안을 오셨는데, 마침 그때 나도 병원에 있어 같이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병원 지하에는 식당이 몇 개 있었는데, 그때 문을 연 곳은 돈가스 가게와 짜장면 가게였다. 외할머니께서는 돈가스가 드시고 싶다고 하셨지만, 철없던 내가 짜장면을 주장하여 짜장면 가게로 가게 되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려 하는데, 할머니께서 대뜸 왕돈가스를 주문하셨다. 점원은 당황했지만, 옆에 계신 할아버지께서 덤덤히 왕돈가스 대신 짜장면을 주문하셨다. 할머니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이후 나온 짜장면을 맛있게 드셨다. 나중에 듣고 보니 외할머니는 이전부터 조금씩 치매 증상을 보이고 계셨다. 점점 증상이 심해지고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내가 가진 가장 오랜 기억보다도 더 이전의 시간부터 외할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아주 많이 어렸을 때는 외할머니와 같이 살았고, 많이 어렸을 때도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자주 오곤 하셨다. 7살 차이 여동생이 태어나 막내 자리를 뺏겨 서러웠던 때에도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셔서 내 하굣길에 손을 잡아 주셨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나는 할머니가 쓰셨던, 청록색 그물망 안에 하얀 빨대로 채워진 베개, 그 베개에서 나는 할머니 체취를 맡으며 잠에 드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 할머니의 머릿속이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황혼 증후군은 주로 치매 환자에게서 나타나는데, 해 질 무렵이나 저녁이 되면 불안, 혼란, 초조함 등의 증상이 심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치매 환자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몸은 그대로 둔 채 정신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모든 어린아이가 밤을 무서워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어린아이일 때 밤을 무서워했다. 치매가 시작되면 이런 부분까지 어린 시절과 비슷해질까. 이제는 내가 당신보다 더 자란 것일까.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때가 온 것일까. 나는 그 이후로 할머니를 만날 때면 어디를 가던 늘 손을 꼭 잡고 다닌다. 헤어질 때면 꼭 안고 한동안 가만히 있으면서 그 채취를 통해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치매 환자는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잊어가고, 오래된 기억은 비교적 오래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신의 사라지는 기억 중에서도 내가 가능한 한 오래 남아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