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
죽음과 두려움.
나는 죽음이 싫다.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몸서리쳐질 정도로 공포스럽다. 그것은 몹시 복합적인 감정인 것이, 두려움의 줄기를 따라가 보면 마치 수백 년 된 고목처럼 여러 갈래로 뿌리내려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두려운 첫 번째 이유. 나는 죽어본 적이 없다. 죽음 너머에 대해 단 하나도 아는 게 없다. H. P. 러브크래프트는 인간이 느끼는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공포에 대해, 미지에 대한 공포라고 말한 바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한 것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니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죽음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누군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영원히 미제로 남을 것이다. 게다가 그 미제는 결코 거스를 수도, 회피할 수도 없다. 세상 수많은 사람이 제각각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찾아온다. 어쩌면 가장 거대한 코즈믹 호러는 죽음일 것이다.
그렇기에 생기는 두 번째 이유. 예기치 않은 죽음이 육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일지 두렵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꿈 쓰기 대회를 진행해 전교생이 필수로 참여해야 했다. 나는 며칠을 고민하던 끝에, ‘편안하게 죽는 것’에 대해 적어서 냈다. 고통스럽지 않게,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법으로 죽을 수 있다면, 그것이 뻔히 쓰이기로 기대되었을 의사나 변호사, 과학자 따위의 꿈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따로 부르시고는, 내가 자살하려는 것이 아님을 몇 번이나 되물으신 다음 나를 놓아주셨다. 더욱이 생명과학과 의과학을 공부할수록, 인간을 끔찍이 고통스럽게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는 질병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알게 된다. 그것에 더해 예기치 않은 사고에 의한 고통스러운 죽음까지 더하면, 더 이상 두려움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할지도 모른다.
세 번째 이유. 나는 잊히는 것이 두렵다. 기억되고 싶다. 내가 죽어도 이 세상은 한 점의 변화도 없겠지.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했는지조차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마저도 시간이 얼마 지나 그들에게도 잊히면, 나는 마치 이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았던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무섭다.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음으로 인해 이 세상이 티끌만큼이나 바뀌긴 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 기억될까. 아마 훗날 내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죽음과 미련
나는 삶을 원한다. 이건 죽음을 두려워하는 감정과는 또 다른 감정이다. 이 세상에서 하고 싶은 일이 많다. 이루고 싶은 것도 많아. 살면서 행복하다고 느껴본 기억이 없다.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꼭 찾아서, 내 손으로 쥐고 싶다. 그렇기에 그 순간이 오기까지 나에게 주어진 삶을 붙들고 싶다. 누군가 나더러 너는 왜 살아가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런 대답을 할 것이다. 그런데 죽고 나면, 그 무엇도 남지 않는다. 나는 아직 죽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정확히 표현하면, 삶에 미련이 많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