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의 구걸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일까

by 냄도

나는 가끔 심연 같은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그것은 슬픔, 우울함, 불행 등과 같은 단편적인 감정은 아니다. 그보다는 더 복합적이고, 마음속 깊은 곳까지 파고든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나쁜 감정인 것만은 아닌 것이, 그것은 나를 채찍질하여 나 스스로가 편안히 쉴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된 나는 다시 한번 구걸하기 위해 세상을 나선다. 그 목에는 죄수들이 머그샷을 찍을 때 거는 플래카드 비슷한 무언가가 걸려 있다.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 아닙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태어나고 보니,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가 생겼다. 불행했던 적이 더 많았지만,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썩 나쁘지만은 않은 삶인가 싶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크게 변함이 없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는 게 좋았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서 이런 한갓진 생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것 같다. 살아남는 것이 단순히 숨을 헐떡헐떡 쉬고 멍청하게 눈을 깜빡이는 것이면 모르겠지만, 그건 사회적으로는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으니까.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온 듯싶다. 초등학교에 갔다. 몸집도 왜소하고, 말주변도 없었다. 친하게 지내는 친구도 없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중학교에 갔다. 시험을 봤는데, 성적도 그냥 그랬다. 그래서 학원에 다녔다. 그건 나를 조금이라도 쓸모 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나의 부모님은 나의 쓸모를 위해 잠과 쉼을 줄이면서까지 열심히 일하셨겠지. 그렇게 고등학교에 갔다. 좋은 친구들도 만났다. 나는 더 많은 학원에 다니고, 더 많이 공부했다. 그렇게 대학에 갔다. 좋은 친구들을 또 만났다. 지나고 나면 머릿속에 남는 것이 하나 없을지라도, 좋은 학점을 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 숫자들은 내가 쓸모없기만한 사람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괜히 기분이 좋아지거나 안도감이 들거나 했다. 그리고 지금에 도착했다. 이 정도면 이제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지, 쓸모없는 사람인지와 별개로, 나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인 것을 계속 보여야만 했다. 보이다는 표현이 지나치게 고상하다면, 좀 더 솔직한 표현이 필요하다면, 구걸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니, 나에게도 기회를 주세요. 내가 얼마나 훌륭한 사람인지 한번 보고 나서, 내가 당신에게 하등 쓸모가 없거든, 그때 나를 버리셔도 좋아요. 그러니 저를 한 번만 봐주세요. 아무쪼록, 그런 것들은 끊임없이 있었다. 시험을 보고, 대학이나 알바, 회사나 연구실에 지원하고, 면접을 보고, 대부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받고, 아주 가끔은 충격적인 결과를 받고, 그보다 더 가끔 좋은 결과를 받는다. 인간관계에서도 그런 일은 적지 않다.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쌓여갈수록, 나는 점점 나의 쓸모를 의심하게 된다.


나는 나의 쓸모를 아직은 믿는다. 그래서 구걸할 힘도 있는 거겠지. 그렇지만 사람이라는 것이 아무리 강인하여도 계속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 계속되는 거절, 불합격, 실패, 뭐 그런 비슷한 어떤 것이든, 그 모든 것을 다 털어내고 처음과 같은 사람이 있기나 할까. 나는 그렇게 강인한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장 발장은 조카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구걸했다. 어느 날은 아무도 그에게 빵을 주지 않자, 그는 빵을 훔쳤다. 그리고 그는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굶주리고 있을 조카들을 생각하던 장 발장은 여러 차례 탈옥을 시도하다 14년의 형량이 추가되었고, 19년이 지나서야 다시 세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전과자였고, 이제는 아무도 그에게 빵을 주지 않았다.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다 한 주교의 집에 머무르게 되는데, 그는 은촛대를 훔쳐 달아나려다 경찰에게 붙잡혔다. 그러나 주교는 장 발장이 은촛대를 훔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물한 것이라며 그를 변호했다. 그는 장 발장에게 하나의 은촛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을 선물했다.


나는 빵을 먹고 싶다. 운이 좋다면 따뜻한 밥 한 끼를 먹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은촛대를 받을 수도 있겠지. 언젠가는 다른 장 발장에게 은촛대를 선물할 수 있는 주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니면 나도 이러다 굶주림을 못 이겨 빵을 훔치는 것은 아닐까. 감옥에 가게 되면 어떡하지. 너무 혼란스럽다. 나의 삶이 이미 쓰인 한 권의 책이라면, 책의 중간과 결말 부분을 당장 펴서 읽고 싶다. 내 구걸의 끝은 어디일까. 나는 가끔 심연 같은 회의감에 빠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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