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기쁨
이 감정은 자연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순응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살아오며 여러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기는 내 또래, 주변 사람들의 성공의 시기와 겹치곤 했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진실된 축하를 건네지 못했고, 그런 모습을 스스로 되뇔 때면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여러 부정적인 감정이 혼합되어 큰 덩어리가 되었다. 시기와 질투, 자격지심, 열등감, 미래에 대한 불확신, 현재에 대한 비관 등. 그 중에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시기와 질투였다. 아이러니했던 것은, 때때로 그들이 불행한 일을 겪을 때에 뭔가 모를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것이다. 축하해주지는 못할 망정 시기와 질투를 하고, 그들의 불행에서 쾌감을 느꼈던 나는 정녕 부도덕하고 몹쓸 인간인가.
시기와 질투는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일까? 아니면 자본을 중시하고 서로를 비교하는 사회적 풍토, 혹은 나의 개인적인 성격에 의해 생겨난 감정일까? 여기 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2009년, Takahashi 연구팀은 19명의 건강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fMRI 실험을 진행했다. 연구팀은 피험자에게 세 가지 인물을 소개하는 글을 제시했다. 첫 번째 사람은 높은 사회적 지위, 재산, 외모 등을 가진 인물로, 실험자들은 이들이 피험자들의 ‘시기 대상’이 될 것으로 보았다. 두 번째 사람은 중간 수준의 인물로, 좋거나 나쁜 특징이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었다. 세 번째 사람은 피험자와 비슷하거나 그보다 하위 수준이라고 판단될 만한, 결격 사유가 있는 인물이었다. 각 인물은 사회적 비교를 유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생생하고 상세하게 묘사되었다. 이를테면 ‘이 인물은 서울대학교 졸업 후 의사로 일하고 있으며, 키는 180cm가 넘고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던지, ‘이 인물은 빼어난 미모 덕에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어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식으로. 그리고 피험자들에게 각 인물에 대한 시기심 정도를 1점부터 6점 척도로 평가하게 하였다. 이후 실험자들은 세 부류의 인물이 불행한 일을 겪는 장면을 피험자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쾌감 정도를 1점부터 6점 정도로 평가하게 하였다.
실험자들은 피험자들이 세 부류의 인물에 대한 서사를 이해하는 과정과, 불운한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관측하였다. 그 결과, 실험자들이 시기 대상을 처음 접하는 과정에서는 뇌의 전측 대상회(ACC)가, 인물들이 불행한 일을 겪었음을 접하는 과정에서는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이 활성화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이한 점은, 시기심 점수가 높은 대상이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복측 선조체의 활성이 더 컸다는 것이었다.
전측 대상회는 본래 물리적 통증을 담당하는 뇌의 특정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특히 고통의 위치, 강도, 주관적 인식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영역이었는데, 21세기의 여러 연구가 전측 대상회가 특정 감정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활성화됨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전측 대상회는 왜 시기심을 느낄 때 활성화될까? 그것은 시기심이 단순히 나보다 더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는 ‘감정’에 그치지 않고, 그보다 훨씬 복잡한 '고통'으로써 작용하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곧 시기심의 맨 아래에는 상대적 박탈감, 사회적 불공정감, 자기 가치 하락감과 같은 정서가 깔려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전측 대상회는 사회적 고통, 불공정한 보상 분배, 차별 및 불균형 감지 상황에서도 활성화된다. 결론적으로 시기와 질투는 상대의 성공과 나의 실패를 비교하는, 자아와 타인의 불균형 인식에서부터 시작되며, 복합적인 감정을 수반하여 심리적 고통을 야기한다고 볼 수 있다.
복측 선조체는 도파민에 의해 활성화되는 뇌의 핵심 보상 회로 중 하나이다. 쾌감, 보상, 기대, 긍정적 자극을 처리하는 뇌의 특정 부위로, 복측 선조체의 활성은 뇌가 “기분 좋다.”, “보람 있다.”, “더 원한다.”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음으로 해석된다. 이 실험에서 복측 선조체가 활성화되었다는 것은, 피험자들이 특정 인물의 불행을 접했을 때 쾌감을 경험했음을 신경학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다. 특히 피험자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평가된 인물이 불행한 일을 겪었을 때 복측 선조체의 반응이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시기심이 클수록 그 대상의 불행이 더 큰 쾌감으로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뇌는 타인의 불행을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 우위의 손상으로 해석하며, 그로 인해 자신의 상대적 지위가 회복되거나 향상되었다고 인식한다. 이러한 상대적 보상은 실제로 내가 얻은 것이 없더라도 쾌감을 유발하는 신경 보상 반응을 일으킨다.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는 독일어로 손해를 뜻하는 ‘Schaden’과 기쁨을 뜻하는 ‘Freude’의 합성어로, 타인의 불행에서 느끼는 기쁨이라는 뜻이다. 얼핏 비도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권선징악을 통해 느끼는 쾌감도 샤덴프로이데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마냥 그렇지는 않다. 심리학적으로 샤덴프로이데의 발생은 다음 조건 중 하나에서 나타난다. 첫째, 상대가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 둘째, 상대에게 시기감이나 적대심이 있을 때. 셋째, 상대가 규범을 어기거나 자만했을 때. 넷째, 상대가 경쟁 관계에 있을 때. 즉 샤덴프로이데는 단순한 악의가 아니라 상대적 비교와 정의감, 자아 방어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감정이다.
샤덴프로이데는 생물학적 작용으로 인해 생기는 감정으로,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 중 하나이다. 많은 문화에서는 이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를 금기시하지는 않지만, 이를 표현하는 것은 부도덕하다고 간주한다. 문학과 예술에 자주 등장하는데,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옙스키와 같은 고전 문학부터 최근 영상 매체까지, 복수나 몰락은 독자나 시청자에게 쾌감을 선사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나는 요즘 부쩍 이러한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려 노력한다. 시기와 질투, 샤덴프로이데, 혹은 그 밖의 다른 감정들이 일으키는 파도에 스스로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실질적으로 나의 행복에 어떤 좋은 영향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샤덴프로이데의 핵심은 실제로 내가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쾌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순간적인 ‘쾌감’이지만, 그렇기에 되려 내 눈 앞에 놓인 현실을 망각하게 한다. 여전히 나는 이룬 것이 없고, 나아가야 할 길이 멀지만, 타인의 불행에 안도하여 스스로 안주하게 한다.
복측 선조체는 타인의 불행에서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행복을 감지할 때도 활성화된다. 두 현상 모두 자연스럽고 본능적이지만, 우리가 둘 중 어느 것을 받아들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는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