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2)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

by 냄도

죽음과 충동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는 비교적 낮은 빈도로, 아주 가끔, 만약 지금 죽는다면 어떨지 생각해 본다. 12살, 2층 연립 아파트에 살다가 처음으로 고층 아파트로 이사 갔다. 하루는 빨래를 널러 베란다에 나갔는데, 통유리로 된 창문 너머로 까마득한 세상이 보였다. 가장 먼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른 빨래를 널고 도망가려 했다. 그런데 문득, 창문을 활짝 열고, 내 몸을 중력에 맡기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했다. 빠르게 추락하는 몸과 거기에 부딪히는 바람. 바람은 시원할까. 땅에 떨어지면 어떤 느낌이 들까. 많이 아프려나.

25살, 학교에서 강의를 듣는데, 건물 4층에서 다리를 건너 반대편 건물로 건너가야 강의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리는 굉장히 좁았는데, 간이 난간이 위태롭게 양옆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 다리를 지나갈 때면 무서워서 앞만 보고 걸었는데, 하루는 이 난간에 기대었다가 난간이 부서지는 상상을 했다. 부서진 내 몸이 땅에 널브러져 있으면 어떤 기분일까. 이러다가 진짜 발을 헛디디면 어떡하지. 학교 안에 대학병원이 있으니까, 죽지는 않겠지.

어제, 밥을 먹는데 음료수가 다 떨어져서 에너지 드링크를 마셨다. 점심에 한 캔, 저녁에 한 캔을 먹었는데, 저녁을 먹고 시간이 얼마 지나니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손을 가슴에 얹었는데, 심장이 박동하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냉장고에 남은 에너지 음료를 전부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마시면 죽나. 이러다가 심장이 튀어나오는 건 아닐까. 심장 박동이 점점 크게 들리는 듯했다. 한 캔을 더 마실까 하다가, 그만뒀다.

프로이트는 ‘타나토스’라고도 불리는, ‘죽음 충동’이라는 개념을 제창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때때로 무의식적인 자기 파괴, 자기 처벌적 경향을 보일 때가 있다. 물론 그것이 실재하는지, 모든 인간이 보편적으로 지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검증할 수 없지만, 나는 그것이 나의 내면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이 느껴진다. 어쩌면 애초에 그런 건 없었는데, 그의 이론을 알고 괜히 내가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든, 나는 가끔 죽음을 상상한다.


죽음. 죽음. 죽음.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인 ‘코코’를 보면, 사람이 세 번 죽는다는 내용이 있다. 숨이 멎는 순간 생물학적으로 죽고, 장례식에 온 하객들이 떠나갈 때 사회적으로 죽고, 그 사람을 기억하는 마지막 사람이 죽으면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라고 한다. 그 내용이 몹시 인상 깊었다. 죽음은 당사자의 일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살아있는 주변 사람들의 일이기도 하다. 죽는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기 싫은 만큼이나, 살아 있는 사람도 죽은 이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비록 소중한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기억한다면 마음속에 계속 살아있을 수 있다.


영원한 삶.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후대에 길이 기록된다. 셰익스피어나 공자, 왓슨과 크릭 같은 사람들. 많은 사람이 그들처럼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꿈꾼다. 부와 명예, 사람들의 존경과 역사의 기록 같은 것들. 물론 중요하다. 나도 그것들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보다도 더 그들이 부럽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들은 세세토록 세 번째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 이름 한 줄 남기는 삶을 꿈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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