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냄새로 인해 기억이 상기되는 현상
사람은 너무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잘 간직하지 못한다. 이는 유아기에 미성숙한 뇌가 기억을 오래 저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고, 언어 능력이 부족해 기억을 이야기로 저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어린이집에서 호박죽과 연근조림을 억지로 먹다가 토해낸 기억과, 어머니께 혼나 집 밖에서 손을 들고 서서 어머니가 잡수시던 라면을 구경하던 기억과, 밤마다 현관문에 스산하게 비치던 가로등 불빛을 보며 잠을 설치던 기억을 제외하면, 사실 이것들마저도 장면이나 편린 수준에 불과하지만, 가장 선명하고 오래된 기억은 8살 때이다.
나는 두 형제 중 막내였다. 생일이 빠른 탓에 학교나 유치원을 한 살 일찍 들어갔고, 오히려 그 덕에 형의 우산 아래에서 원만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집에서는 막내아들의 자리를 지키며 부족하지 않은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으로부터 동생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부모님의 연세가 적지 않았고, 평소에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열 달이 지나고, 예쁜 여자아이가 태어났다. 아들 둘만 있어 다소 칙칙하던 우리 집에 밝은 햇볕이 들게 되었다.
그러나 어린 나에게는 동생이 생긴 것이 마냥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적지 않은 연세에 세 번째 출산을 하셔서 당신의 몸을 조리하시기에도 바쁘셨고, 아버지는 늘어난 식구가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일하셨다. 어쩌다가 가족들이 다 모여도, 나는 대화의 소재가 되기 어려웠다. 나는 아직 더 많은 관심이 필요했다. 오늘 학교에서 무얼 배웠는지 떠들고 싶었고, 책을 읽다가 모르는 단어가 생기면 무슨 뜻인지 바로 물어보고 싶었다. 하굣길에 부모님 손을 잡고 집에 가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그나마 좋은 점이 있다면 가끔 어머니 몰래 거실 구석에 있는 컴퓨터를 할 수 있었다는 것 정도.
그렇게 한두 달이 흘렀을까. 어느 날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데, 못 보던 분식집이 새로 생긴 것을 보았다. 그 분식집은 학교 바로 앞에 있는, 싸고 다소 불량스럽게 느껴지는 간식들을 팔아 아이들로 북적거리는 분식점과는 다르게, 가게 외관도 말끔하고 손님들도 대부분 어른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하교하는 시간대에는 손님이 많이 없었다. 그 가게를 지날 때면 가게 앞 가판대에서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떡볶이나 순대, 어묵 등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그 앞에 서서 떡볶이를 멍하니 쳐다보곤 했다. 가끔 용돈을 받을 때면 떡 1개에 100원 하는 그 비싼 떡볶이를 한 컵 사 먹었다.
하루는 가게 앞에 멍하니 서 있는 나를 보고는, 아주머니가 나를 부르셨다. 아주머니는 떡볶이가 먹고 싶은데 돈이 없는 것인지 물으셨다. 허구한 날 집에 안 가고 그 앞을 서성이던 내가 신경 쓰이셨던 것이었을까. 나는 당황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그 대답을 더 이상하게 생각하셨는지, 그럼 대체 가게 앞에서 뭘 하는 거냐고 다시 물으셨다. 나는 망설이다가, 집에 가도 할 게 없다고 말했다. 형은 학교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집에 늦게 오고, 어머니는 갓난 동생을 돌보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고. 가게 앞에서 빨간 떡볶이를 멍하니 쳐다보면서 그것이 익어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재미있어서 지금껏 그랬다고.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아주머니는 당황하시더니, 언제든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 말이 그렇게 고마웠다.
그런 나날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때부터인가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왔다 가셨다. 아마도 어머니가 당신의 어머니께 도움을 요청했던 것인 듯했다. 외할머니는 한 번 오실 때면 며칠 있다가 가실 때도 많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외할머니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래서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이 너무 좋았다.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학교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나를 데리러 오셨다. 나는 쭈글쭈글하고 커다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남부럽지 않게 하교했고, 그럴 때마다 집 앞에 있었던 L 패스트푸드점에서 2개에 천 원 했던 치즈스틱을 사달라고 졸랐다. 어느 날은 할머니 손을 잡고 분식집 앞을 지나다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는데, 아주머니는 나를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모쪼록 할머니가 오시는 날에는 분식집에 들르지 않아도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