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한 냄새로 인해 기억이 상기되는 현상
그로부터 5년 정도가 지나고, 우리 집은 아예 다른 동네에 있는 더 큰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나는 더 이상 동생을 미워하지 않을 정도로 자랐다. 새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낯선 베개가 보였다. 하얀 그물망을 청록색 헝겊으로 마감한, 그 안에는 속이 빈 원통형 플라스틱 빨대 같은 것들이 가득 채워진 베개였다. 그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쓰셨던 베개인데, 거기서 할머니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내가 잡았던 할머니의 손에서, 나를 안아주셨던 할머니의 품에서 났던 그 냄새였다. 오랜만에 맡으니 기분이 묘했다. 이제는 일 년에 몇 번 볼 일이 없는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할머니 손을 잡고 집에 가던 그 길과, 내 손에 쥐어진 치즈스틱도 생각났다.
나는 그 베개를 줄곧 내 침대에 두고 지냈다. 기분이 좋지 않을 때면 그 베개에 얼굴을 묻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나를 달래셨다. 냄새는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상하게도 그 베개에서 나는 할머니 냄새는 하나도 줄어들지를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지는 것이었을지도.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면서 그 베개와는 자연히 멀어졌다. 어느새인가 사라져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했는데, 여러 보급품을 받는 와중에 베개 하나를 받았다. 그 베개는 청록색 그물망 안에 하얀 빨대 같은 것들로 채워진 베개였다. 딱딱해서 별로 느낌이 좋지는 않았지만, 베개가 그것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베고 자야 했다. 베개는 새것 특유의 인공적인 냄새가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머니 생각이 났다. 누워서 뒤척일 때마다 빨대끼리 부딪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딱딱한 듯 푹신한 듯 머리를 받치는 그 촉감에서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는 그렇게 군 생활을 외할머니와 함께했다. 나중에 솜 베개를 보급받은 후에도, 그 베개는 여전히 머리맡에 있었다.
‘프루스트 현상’은 특정 냄새가 아주 갑자기 생생한 과거의 감정과 장면, 느낌을 불러오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 뇌는 기본적으로 생존에 필수적이거나, 강렬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을 오래 기억한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평상시엔 잘 나지 않았다가, 그 기억과 연관된 특정 냄새를 다시 맡으면 강하게 상기된다. 이러한 상황을 프루스트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기억은 감각과 결합할 때 더 강하게 남는다. 냄새, 촉감, 소리. 그런 것들이 내가 잊지 않도록 돕는다. 덕분에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도움이 없어도 그 시절과 나의 외할머니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던 것은 왜일까. 혼란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