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자리의 부리 부분에 위치한 쌍성
근대 초기 잉글랜드의 철학자인 존 로크는 그의 저서인 『인간오성론』에서, 인간이 소유하는 이성과 지식, 부지런하고 무한한 상상의 근원에 대해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백지와 같다. 인간은 직접 이 세상을 살며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되고, 그 경험을 토대로 하여 모든 지식과 관념을 창조하고, 공유한다.
인간의 경험은 감각과 반성으로 이루어진다. 눈으로 직접 보고, 귀로 듣고, 만지고 느끼면서 이 세상과 교감한다. 그렇게 받아들인 정보들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가공하여 비로소 경험을 완성한다. 감각은 모든 생명체에게 있지만, 그것을 내면에서 받아들이고 재창조하는 능력은 신이 인간에게만 하사했고, 그래서 인간은 이 세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은 직접 느끼는 것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에서 이러한 경향이 잘 드러나는 일화를 볼 수 있다. 당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이내 부활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도마를 제외한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헐레벌떡 달려와 도마에게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알렸지만, 도마는 그들에게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못하겠노라.” 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8일 후, 예수님이 도마 앞에 직접 나타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말하며 일화가 마무리된다.
알비레오는 백조자리의 부리 부분에 위치한 쌍성으로, 노란색 주성인 알비레오 A와 파란색 동반성인 알비레오 B를 한 번에 일컫는 말이다. 알비레오는 관찰하기에도 비교적 쉽고, 서로 대비되는 두 색의 별이 어두운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신 관측 자료에 따르면, 두 별은 중력적으로 연관이 없는, 그저 시선 상으로 가까이 보이는 겉보기 쌍성에 불과할 뿐이라는 가설이 유력하다. 고전적인 관측 자료상으로도 두 별의 거리는 최소 태양-명왕성 간의 거리보다 100배도 넘게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았는데, 최신 자료는 아예 두 별이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제시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노란색 주성인 알비레오 A는 사실 A1과 A2, 두 개의 별이라는 점이다. 현존하는 망원경으로는 알비레오 A가 사실 두 개의 별임을 구분할 수 없었는데, 별이 발산하는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사실 두 개의 별이었음이 밝혀졌다. 두 별은 실제로 지구-태양 간의 거리와 비슷하게 추정될 정도로 무척이나 가깝고(우주에서 이 정도 거리는 무척 가깝다.), A2가 A1에 비해 훨씬 어두워 두 개의 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마 망원경 자체가 없었던 16세기 이전에는, 알비레오가 쌍성이라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맨눈으로는 두 별을 구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비레오는 하나의 별이었다가, 두 개의 쌍성이었다가, 두 개의 쌍성으로 이루어진 별이 다시 이루는 쌍성이 되었다.
별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언제까지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고. 인간은 그것을 본다고 믿었고, 이해했다고 여겼지만, 실은 감각이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세계를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는 이 세계는, 과연 세계 그 자체일까. 아니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허락받은 하나의 해석에 불과한 것일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았던 도마는 꾸짖음을 들어 마땅했던 것일까.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맹신하고, 그것에 너무 의존적인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