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
태어날 때, 인연인 사람들은 손과 발이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고 했다. 이들은 설사 원수의 집안이거나, 이역만리 떨어져 있거나, 빈부차가 아무리 심할지라도 결국 맺어진다. 천 리의 인연이, 한 가닥의 줄에 이어져 있는 것이다. 『속현괴록』에 나오는 월하노인 이야기이다.
중국 당나라 때였다. 위고라는 사내는 혼기가 차도록 신붓감을 찾지 못해 장가에 들지 못했다. 어느 날, 그는 여행을 하다가 한 객점에 묵게 되었다. 늦은 밤 잠을 설치던 위고는 인근을 산책하다가, 한 노인을 보게 된다. 노인은 달빛 아래에서 두꺼운 책을 열심히 뒤적거리고 있었고, 노인의 옆에는 붉은 실로 가득 찬 커다란 포대가 있었다. 위고는 호기심을 느껴 노인에게 다가가 그가 읽고 있는 책과, 그 옆에 놓인 자루에 대해 물었다.
노인은 그 책이 천하 남녀의 혼인에 관한 인연을 기록한 책이며, 그에 따라 인연인 남녀의 손과 발을 포대에 든 홍실로 묶는다고 하였다. 그가 홍실로 묶은 두 남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맺어진다고도 하였다. 위고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노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더 하려 하였다. 노인은 이윽고 몸을 일으켜 근처 시장을 향해 갔다. 그들은 시장 쌀 가게에 도착했는데, 가게 앞에는 한 쪽 눈이 애꾸인 여인이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노인은 위고에게 저 아이가 장차 자네의 아내가 될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위고는 노인이 자신을 놀리는 것이라고 생각해 몹시 분노했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위고는 객점에 돌아와 자신의 하인에게 아까 본 여자아이를 칼로 찔러 죽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설사 시간이 지나더라도 아이가 자신의 아내가 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명령을 받은 하인은 곧장 쌀가게로 달려가 아이를 칼로 찌르고 달아났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났다. 위고는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지금의 도지사 격인 상주자사 왕태의 눈에 들었다. 왕태는 미모가 빼어나기로 알려진 자신의 딸을, 아직 혼인을 하지 못해 노총각인 위고의 아내로 주려 하였다. 다만 의아하였던 점은, 왕태의 딸의 미간에는 칼에 베인 흉터가 있었다는 점이다. 위고는 이상하게 느껴 왕태에게 그 흉터에 대해 물었고, 왕태는 14년 전 유모가 아이를 안고 시장에 갔다가, 웬 괴한이 딸을 칼로 찌르고 도망갔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다행히도 아이는 살았지만, 흉터는 지워지지 않았던 것이었다. 위고는 14년 전 홍실 노인을 떠올렸고,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평생을 좋은 남편으로 살았다고 한다.
과거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야기들은 저마다의 가르침을 담는다. 인간의 고민과 고뇌는 늘 닮아 있기 때문에, 각각의 이야기들은 그 창작자로부터 우리까지 닿아 오는 것이다. 월하노인 이야기는 어떻게 오늘날까지 이어져 올 수 있었을까.
나는 인연을 믿게 되었다. 손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붉은 실 같은 것은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믿게 되었다.
나는 나를 지키게 되었다. 어긋나는 관계에 매몰되지 않고, 그가 인연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고 나니 그것이 나를 지키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다. 보이지 않는 이 붉은 실이 천천히 짧아지다 보면 언젠가 그 인연이 곁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 주변의 것들에 기꺼이 마음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지금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잠깐 스치는 사람일지라도 이 사람이 인연일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졌다.
어느 새인가 내 손에 감긴 붉은 실이 어렴풋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