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종말

표현에 인색한 세상

by 냄도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던 최종훈 교수가 쓴 ‘인생 교훈’의 구절 중 일부이다. 여러 매체에서 가공되고 전파되면서, 이 말을 누가 했는지는 몰라도 말 자체를 들어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 말이 널리 퍼졌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공감했다는 뜻이겠지. 불필요한 말을 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말실수를 해 의도치 않게 일이 잘못되는 경험이 문득 떠오른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라는 속담이나, 성경 잠언의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우고, 그 입술을 닫히면 슬기로운 자로 여기우느니라.”라는 말씀도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 보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일종의 도의처럼 여겨지는 것일 수도 있겠다.

솔직하고 섬세하며 감수성이 풍부한 여러 문학적 표현을 이상한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존재한다. 그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 “오글거린다”라는 표현이다. 오글거린다는 말이 사회적으로 만연한 이후, 셀 수 없이 많은 표현과 마음이 “오글거려”라는 말에 한 줌의 창피로 전락해 무색하게 되었다. “감성적이다”라는 표현도 본래의 뜻과는 다르게 “너무”라는 부사에 더해져, 이성적이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 매몰되는 사람들에게 자주 쓰이는 표현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휩쓸리고, 또 의식하면서 점차 자신의 감정이나 정서를 표현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다. 비단 상대방의 반응 때문만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 자체를 꺼리는 사람도 많다.

기술의 발전이 이 세상을 아주 크게 바꾼 부분 중 하나는, 사람들이 시간을 단축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의 삶은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효율적인 방향으로 변모했고, 세상을 대하는 방식도 크게 변했다. 하물며 쾌락과 사유마저 빠르고 직관적인 것이 세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어서, 본래 그 성질이 느린 것들은 자리를 잃거나 변화하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문학이다. ‘문학’은 ‘언어와 글자를 매개로 하여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예술’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매일 보는 짧은 형식 위주의 영상 콘텐츠들도 넓은 범위에서의 문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느리고 어려운, 줄글로 된 문학을 잘 소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세상이 되었다.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는 세상. 빠르고, 직관적이고, 쾌락적인 자극이 만연한 세상. 마치 ‘1984’의 오세아니아처럼 언어와 표현이 파괴되고 종말하고 있는 세상.

그렇지만 세상 모든 사람이 그러한 종말에 동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세아니아에서 언어는 점점 단순해졌고, 결국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표현할 언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다만 여러 이유로 그것을 쓰지 않기로 선택했을 뿐이다. 표현의 종말은 누군가에 의해 강요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에 더 가까이 다가온다. 그렇기에 표현을 아끼지 않는 것은 사소한 의사소통 행위가 아니라, 사고와 인간다움을 지키는 고결한 행위일 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되는 순간은 많다. 그러나 말해야만 하는 순간도 분명히 존재한다. 감정이 지나치게 솔직해 보일까 두려워 침묵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것이다. 고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고유성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표현은 하는 사람이 있으면, 듣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듣는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말하기 마련이고. 그래서 나는 나의 표현이 누군가를 통해 다시 새로운 표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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