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심과 이타심 사이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자취방으로 가는 길이면, 늘 사람으로 북적이는 지하철역 사거리를 지났다. 그 사거리에는 전단지를 나누어 주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님들이었다. 전단지를 내미는 손에 갈 길이 막힌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누구는 마지못해 전단지를 받아서 한 손으로 구기고 주머니에 넣는다. 누구는 고개를 까딱 숙이며 나름 미안하다는 표시를 보인 후 갈 길을 간다. 누구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민 손을 무안하게 만들고, 누구는 아예 전단지를 내미는 손을 못 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길을 간다. 물론 생긋 웃으며 전단지를 받는 사람도 있다.
나는 전단지를 돌리는 분들을 보면 멀리서부터 쪼르르 가서 먼저 손을 내밀곤 했다. 가는 길에 마주친 할머님들 한 분도 빠지지 않고 그렇게 가서 전단지를 받았다. 그 자리에서 바로 구겨 넣으면 혹시 슬퍼할까 싶어서 집 앞까지 포개서 가져온 다음, 두 번 접어 버리곤 했다. 그건 뭐랄까. 나의 알량한 선행이었다. 그런 행동을 하면서 내가 착한 사람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이었을지도. 어느 날부터인가, 문득 그런 행동들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행동으로 만들어진 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도.
모든 선행이 선한 의도에 기반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의도가 악한 선행은 선행이라고 할 수 없을까? 그런 행동은 도의적으로 칭찬의 대상일까, 비판의 대상일까? 위선도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세상이 위선으로 가득 찬다면, 결과적으로 행복한 세상이 될까?
공리주의를 주장했던 제레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철학자들은, 어떤 행위가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증진한다면 그 행위는 충분히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을 것이다. 물론 행위자의 의도가 악한 경우, 그 동기는 행위자의 도덕성을 평가하는 데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행동의 도덕적 정당성은 의도보다는 결과에 따라 판단된다. 따라서 이러한 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충분히 선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임마누엘 칸트의 의무론적 윤리는 어떠한 행위의 도덕적 가치를 그 결과가 아니라 의도와 원칙에서 찾는다. 칸트에 따르면, 어떤 행위가 도덕적으로 선하다고 평가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개인적인 욕망이나 결과에 대한 계산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적인 도덕 법칙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따라서 어떠한 행위가 설령 결과적으로 누군가의 행복을 증진하거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타인을 단순한 수단으로 이용하거나 보편적 도덕 법칙에 어긋나는 의도를 포함한다면, 그러한 행위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The most altruistic man is the most selfish.”.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인 에이브러햄 링컨이 했던 것으로 알려진 말이다. 직역하면 “가장 이타적인 사람은 가장 이기적이다.”라는 의미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링컨의 정치적 업적 중 가장 주요했던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노예제 폐지였다. 노예제는 분명 도덕적으로 잘못되었지만, 당시 링컨이 노예제를 폐지했던 것은 단순히 도덕적 선악에 근거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1862년 한 신문에 투고한 편지의 일부에서 발췌한 “My paramount object in this struggle is to save the Union, and is not either to save or to destroy slavery.”라는 구절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최우선적이었던 것은 연방을 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하여 나라를 지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남부의 주요한 노동 인구 구조를 붕괴시키고, 북군에 흑인 병사를 충원하기 위해 노예제 폐지를 추진하였다. 그의 동기는 정치적, 군사적, 국가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행동과 투쟁은 수백만 명의 노예를 해방하고, 노예제를 구조적으로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어쩌면 인간은 날 때부터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이타적인 행동을 함에 있어 한 치의 이기적인 대가가 없다면, 과연 그 행동을 기꺼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선행의 도덕적 가치를 오직 결과로만, 혹은 오직 의도로만 판단하는 것은 모두 현실의 인간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불완전한 동기로 행동하면서도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완벽한 선의가 아니라, 그 의도를 성찰할 수 있는 마음가짐일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선행이라면, 설령 이기심이 섞여 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쉽게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러한 행동이 이 세상에 한 줌의 따뜻함이라도 더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러한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행복이 될 수 있다면, 그 사실은 다시 나의 행복이 된다. 나는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이지만, 부끄러움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