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방울이 얼어붙어 떨어진 눈의 덩이
녹초가 된 몸을 질질 끌며 집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아마도 밤 10시쯤, 무언가 내 어깨를 톡 하고 쳤다. 얼핏 들으면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인가 싶었다. 여기서 비까지 맞으면 정말 최악이다 싶어 뛰어가려는데, 가만 보니 비가 아니고 눈인 것 같았다. 눈이면 차라리 낫다 싶었는데, 다시 보니 그건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니었다. 하얗고 각진 작은 알갱이였는데, 마치 소금 같았다.
그날은 버스를 탔다. 연구실은 집에서 자전거로 30분 거리 정도여서 자전거로 오가곤 했는데, 아직 몸이 익숙해지지 못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는데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자전거를 끌고 나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버스를 타면 출근길에는 곧장 연구실로 빠르게 갈 수 있었지만, 퇴근할 땐 버스가 한참을 빙빙 돌아 느릿느릿 집에 가야만 했다. 모쪼록 아침의 편함과 저녁의 고단함을 바꾼 대가로, 9시쯤 실험을 끝내고 퇴근했음에도 10시가 다 되어서야 저 멀리서 집이 보이기 시작했다.
살면서 우박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때 책에서 읽고 나중에 실제로 한 번 꼭 보고 싶다고 잠깐 생각했던 정도. 나는 그 자리에 서서 검은색 패딩 점퍼에 마치 먼지처럼 묻은, 그 하얀 알갱이를 빤히 들여다보았다. 새하얀 색이 너무 예뻤다. 눈은 가운데가 듬성듬성 뚫려 반대편이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알갱이는 하얗게 가득 메워져 있었다. 눈은 하나하나를 손으로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워낙 금방 녹을 테니까. 그런데 그 알갱이는 뭔가 손에 놓고 쥐면 잡을 수 있을 듯 보였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려 보니, 그 알갱이는 온데간데없었다.
그래서 한참 동안 톡톡 소리를 들으며 두 손을 모아 그릇처럼 만든 채로 서 있었다. 한 알갱이가 떨어지면 손에 올려놓고 볼 심산이었다.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야속하게도 손가락 마디마디가 만드는 어두운 주름살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슬슬 손이 시리다 싶어지려던 찰나, 하얀 알갱이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은 손에 닿자마자 녹기 시작했다. 예쁘고 온전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하얀 알갱이가 가장자리부터 스러지는 순간을 눈에 담았다.
우박은 구름 속에서 만들어진 작은 얼음 알갱이가 강한 상승기류에 의해 땅에 떨어지지 못하고 구름 속을 떠돌며 몸집을 키워 생겨난다. 본래 뜨거운 공기는 위로, 차가운 공기는 아래로 움직이게 되는데, 지표 인근의 비교적 뜨거운 공기와 대기의 차가운 공기가 만나면 강한 상승기류가 생긴다. 특히 공기의 습도가 높을 경우, 상승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머금고 있던 수증기가 물방울이나 얼음으로 변하면서 가지고 있던 열을 주변으로 방출하고, 이 열이 주변 공기를 더 데우면서 더 빠르게 상승하게 된다. 시간대도 중요한 것이, 낮 동안 지표에 축적된 열은 일몰 이후에 차갑게 식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대기에 축적된 복사열은 더욱 높은 대기와 우주로 빠르게 방출되기 때문에, 일몰 무렵부터 이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우박이 생기기 쉽다. 대기와 지표의 온도 차, 습도, 바람의 방향, 시간대. 이 모든 것들이 맞물려 우박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내가 지금껏 우박을 본 적이 없었나 싶다. 그렇지만 그날, 그 시간, 그 자리, 평소처럼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갔으면 인생에 없었을 그 일이, 우연히 나에게 일어났다. 책에서 우박 이야기를 읽고 언젠가 실제로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벌써 십 년은 더 되었으려나. 사실 내가 그것을 바랐다는 기억조차 잊고 있었다. 어린 시절 찰나의 바람이 시간과 공간을 빙 돌아 다시 닿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