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우주와 별
사람은 저마다의 우주를 가진다. 그 우주는 내가 살아오며 직접 느낀 모든 감각의 합이고, 지금도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느끼는 감정들, 겪는 일들, 우리도 모르는 무의식들은 우리 우주 끝자락에서 새로운 우주를 창조해 내고 있다. 그리고 각자는 그 우주의 중심부에 유유히 떠 있다. 우리가 살아가며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은 각각 그 우주에 있는 하나의 별과 같다. 그렇지만 현실의 별과는 다르게, 이 우주의 별들은 각자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다. 관계의 우주에는 법칙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 법칙. 모든 별은 가만히 있으면 서로 멀어진다. 우주는 매일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람을 조금 넣은 풍선에 두 점을 찍고 풍선에 바람을 가득 채우면 두 점이 처음 거리보다 한참 멀어지는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두 별은 서서히 멀어지게 된다. 그러다가 서로의 중력 범위 바깥까지 멀어지면, 그 별은 우주에서 아예 사라지고 만다.
두 번째 법칙. 별은 직선으로만 움직인다. 가까워질지 멀어질지는 그 의지에 달려있지만, 한 번 방향을 정하고 나면 앞으로 혹은 뒤로만 움직일 수 있다. 그래서 관계의 각도는 무척 중요하다. 관계의 각도는 곧 관계의 종류이기도 하다. 서로가 바라보는 관계의 방향성이 일치한다면, 두 별은 언젠가 매우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러고는 서로에게 막혀 더 나아갈 수 없게 되면, 그것은 비로소 관계가 완성되었음을 의미하게 된다. 만약 서로가 바라보는 관계의 방향성이 다르다면, 두 별이 앞을 보고 열심히 간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금방 지나쳐 다시 멀어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처음 별이 우주에 탄생했던 그 순간의 거리보다도 더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서로가 바라보는 관계의 방향성이 어느 정도 비슷하다면, 두 별은 마찬가지로 가까운 거리까지 도달하게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순간을 지나고 나서도 서로 앞으로 가게 되면, 둘은 다시 멀어지겠지. 그렇지만 별은 가까운 다른 별을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서, 그 힘의 세기에 따라 멀어지지 않고 유지되기도 한다. 그 힘은 내가 상대와의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에 달려 있다. 운이 좋다면 각도가 조금 다르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당겨 관계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법칙. 모든 별은 마치 토성처럼 고리를 가진다. 각 우주의 중심 별도 예외는 없다. 그건 일종의 자기방어에 가깝다. 만약 어떤 별이 자기를 향해 너무 빨리 다가온다면, 설사 서로가 서로를 또렷이 마주 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고리는 자신의 주인을 지키기 위해 장벽처럼 상대 별을 막아선다. 고리가 몇 개나 있는지, 얼마나 두껍고 단단한지는 저마다 다르다. 그리고 만약 주인 별이 허락한다면, 고리는 순순히 물러나 상대 별의 접근을 지켜볼 것이다. 그 이후에는 더 가까이 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늘 고리를 잘 보고, 고리에 부딪혀 자신을 파괴하거나, 상대방을 놀라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법칙. 우주에는 예기치 못한 장애물들이 늘 존재한다. 운석, 소행성, 블랙홀 같은 것들이. 그 장애물은 우리의 감각과 경험이 우연히 만들어냈을 수도, 상대의 별이 우리의 우주에 처음 생겨났을 때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 각도가 맞고, 속도가 적당하고, 고리에 부딪히지 않아도, 두 별이 서로 가까워지길 원해도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면 일정 거리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없다. 때로는 다른 별이 불쑥 나타나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은 참 어렵다. 어쩌면 다들 다른 사람들과 일정 이상의 거리를 두며 살아가는 것은, 가까워지기가 이토록 힘든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위험과 수고스러움과 잠재적인 마음의 상처를 감수하고서라도 가까워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가족들, 감사한 스승, 좋은 친구들, 사랑하는 연인 같은 사람들. 그들은 모두 처음엔 우주에 갑자기 나타난 낯선 별이었다. 서로가 부단히 노력한 끝에 가까워졌고, 결국 만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 우주에 있는 많은 별을 유심히 본다.
칼 세이건은 우리가 별의 물질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우주와 별의 일부이니까. 밤하늘에 올려다보는, 하늘과 별을 모두 품은, 실재하는 그 우주의 관점에서는 너무나 아름답고도 합리적인 말이다. 그렇지만 관계의 우주에서 우리는 별 그 자체다. 그리고 그 우주는 온전히 우리 각자의 것이다. 오늘도 나는 끝없이 펼쳐진 나의 우주를 유영하고, 또 사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