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을 쓴다는 것은
통일 신라의 48대 국왕인 경문대왕 이야기이다. 경문왕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귀가 갑자기 자라 당나귀의 귀처럼 변했다. 궁궐 내의 왕후나 궁인들은 아무도 이를 알지 못했고, 오직 왕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 한 사람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 이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지만, 어느덧 시간이 흘러 죽음을 앞두게 되었다. 그는 도성 인근 도림사의 아무도 없는 대나무숲으로 들어가 대나무를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와 같다.” 그 이후로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소리가 장인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 소식을 들은 경문왕이 분노하여 대나무를 베고 그 자리에 산수유를 심었다.
중학생 때였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없는 학생은 있어도 페이스북 계정이 없는 학생은 없을 정도로 페이스북이 유행이었다. 개인 계정 외에도 특정 집단이나 단체를 대표하는 계정도 있었는데, 특이했던 것은 공식 계정 외에도 학교마다 꼭 대나무숲 계정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학교뿐 아니라 웬만큼 사람이 모인 집단이면 대나무숲 계정이 있었다. 그 집단에 속한 누구든 하고 싶은 말을 보내면, 계정의 관리자가 익명으로 그 글을 올려주는 방식이었다. 글을 올리는 것은 구성원만 가능했지만, 그 글을 보는 것은 외부인도 가능했다. 그래서 중학생이던 나는 유수 대학들의 대나무숲 계정을 보며 대학생의 문학이란 어떠한 것인지를 엿보곤 했다. 정해진 형식이 없었다 보니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인이 있는지 물어달라는 글이나, 자기가 처한 상황을 알리며 위로받고자 하는 글, 사소한 농담까지 다양한 글이 올라왔다.
나만의 대나무숲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머릿속 생각이 뒤엉키고, 감정이 혼란스럽고, 현실이 녹록지 않을 때 가서 모든 것을 털어놓을 대나무숲이. 그곳에 가서 마음속에 있는 것들을 한껏 쏟아내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으로 나와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막상 대나무숲 계정에 글을 보내자니 어린 마음에 그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사람들이 나의 마음이나 생각을 재단하거나 폄하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자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럴 친구가 없기도 했거니와, 세상 그 누구도 대나무숲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상대도 사람이고, 이야기를 듣다 보면 지친다. 그리고 아주 일부라도 나와 일상을 공유하는 누군가라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떠나서, 진솔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거리껴질 때도 많다.
사전에 ‘수필’이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인생이나 자연 또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이라고 수필을 설명하고 있다. 다들 초등학생 때 방학 숙제로 일기를 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문학이니 수필이니 하는 단어들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각자의 마음대로 쓰인 모든 글을 다 수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고로 세상 사람 대부분은 작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본인이 작가라는 사실을 잊은 채로 사는 듯하다. 그건 아마도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번거롭거나 귀찮기도 하고, 자신의 글을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큼 좋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필은 보여주기 위해 쓰는 글이 아니다. 시나 소설은 창작을 기반으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쓰는 경우가 비교적 많지만, 수필은 내 생각이나 경험이 주가 된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자연스레 정리하게 되고, 그렇게 쓰인 글을 다시 읽으며 관찰자의 시선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쓸 때마다 대나무숲에 가서 대나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하는 느낌이 든다.
수필을 쓰는 것은 대나무숲에 가는 것이다. 그렇게 쓴 글을 기록해 두고 누군가와 나누는 것은 그 대나무숲에 새 대나무를 한 그루 심는 것이고. 나는 언제든 나의 대나무숲에 들러 내가 심었던 대나무들을 보며 당시의 나를 회상할 수도 있고, 우거진 대나무들 속에서 쉬면서 다시 나아갈 채비를 할 수도 있다. 세상 사람 모두는 각자의 대나무숲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지금이, 오늘이, 요즘이 너무 고단하다면 오래도록 있는 줄도 몰랐던 그 숲에 들르는 것은 어떨까. 그 숲은 오로지 당신을 위해 존재하고,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