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냄도 Nov 27. 2023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설사 마지막일지라도

마지막은 잃음이다. 지금 나에게 있는 무언가가 어떤 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존재하는 동안 안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마지막은 곧 기쁨이고, 좋은 영향을 미쳤다면 곧 슬픔이다.

 마지막은 무겁다. 마지막이라는 글자가 주는 무게감은 감히 헤아릴 수 없다. 마지막은 또한 무섭다. 나에게 지금 주어진 기회나 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덜컥 겁이 난다. 마지막은 더욱 절실하다. 우리가 어떤 순간에 느끼는 그 감정은, 아무리 애써도 결코 온전히 회상될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는 어떤 감정이든 극에 달한다. 그 감정이 더 이상 미래에 존재하지 않음을 자기 자신이 잘 알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마지막’이 존재한다. 그 순간이 자신의 마지막임을 알고 맞이하는 마지막과, 모르고 마주치는 마지막이다.

 전자의 경우를 상상해 보자. 혹자는 준비를 마치고 덤덤하게 마지막을 맞이할 수도 있겠지만, 막상 그 순간이 찾아오면 무너지는 마음을 부여잡기가 쉽지 않다. 이별을 결심하고 사랑했던 이를 마지막으로 만나러 가는 길, 수년간 노력했던 시험이지만 열악한 여건으로 인해 마지막 기회만 남겨둔 상황, 임종을 앞둔 사람이 마지막으로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 무거운 예긴 하지만, 비교적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정도가 다를 뿐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반면 후자의 경우는 어떨까?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음을 깨닫는 시점은 미래에 있다. 따라서 정작 마지막 순간은 평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마지막이 주는 무거움, 무서움, 간절함은 희석되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가 될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때는 이미 그를 이겨낼 만큼 충분히 성숙해져 있을 것이다. ‘마지막일 줄 알았더라면...’하며 후회하기도 하겠지만, 미리 알았다고 해서 더 좋은 결과가 있는 경우는 별로 없는 듯하다.

 

 ‘오늘이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라.’라는 말은 우리 일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 경종을 울리는 의도로 사용되곤 한다. 그렇지만 만약 하루하루가 삶의 마지막이라면 그 사람의 삶은 얼마나 무겁고, 무섭고, 절실할까?

 시간은 무심히 흐른다. 다가오는 마지막 순간도 언젠가 과거에 묻혀 추억이 된다. 어떤 일에, 관계에, 감정에 매몰되지 않아야 설사 좌절하더라도 딛고 일어설 수 있다.

 마지막이 아닌 것처럼 오늘을 사는 건 어떨까? 마지막이라는 글자에 너무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다들 자기 자신을 지켜주었으면 한다. 언젠가 다시 찾아올 것이고, 주어질 것이고, 만날 테니까.

 마지막은 잃음이지만, 잃음이 있으면 당연히 얻음도 있다. 무거운 마지막은 가벼이, 가벼운 처음은 무겁게 여기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억겁에 찰나를 보태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